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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Feb 22. 2023

자투리 실



꽃을 떠서 이불을 만들고 나면
색색의 자투리실이 남는다.


그걸로 비니모자나 목도리를 뜬다. 작은 소품이라도 뜨다 보면 맨 나중에 남은 실들이 간당간당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색깔이 다른 실들을 모아 모아서 소품을 뜬다. 그럼에도 내 손에 맨 지막으 히는 자투리실은 부족할까 봐, 혹은 색의 조합이 너무 안 맞을까 봐, 뜨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지갑을 안 들고나가서 장을 보는 가난한 심정이랄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몸에 작아지는 교복이 신경 쓰이는 여고생의 절한 마음이랄까. 처럼 마지막 자투리실들을 모아 비니 색깔을 정할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머지 실들끼리 합체를 한다. 에도 전혀 조화롭지 못할 것 같던 실들은 서로 정말 잘 어울린다. 상상외의 이쁜 모습으로 타나 나를 놀라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은 자투리실 소품을 뜰 때 비교적 초연한 마음 다. 그저 코를 빠뜨리지 않고 정하게 뜨려고 노력한다. 뜨개질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신경 쓸 뿐, 색상 배합에는  신경을 안 쓰게 되었다. 축력 좋고 폭신한 실은 웬만한 색상끼리는 서로 조화 이루어지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저께 남은 실은 연두브라운이었다. 런데 뜨다 보니 라운이 조금 모자랐다. 비슷한 계통의 브라운 찾아서 폼폼 만드는 데 혼방으로 했다. 성된 색상을 직접 기 전까지는, 이번엔 정말로 언밸런스한 색이 되지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자투리  색상의 털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친밀한 오누이처럼 배합이 화로웠. 또 감동이었다.




자투리 실로 짰는데 이뻐, 생각보다 훨씬 이뻐.


자투리, 즉 꼬랑댕이 실이 다 소진되고 나면  딸한테 자랑을 한다. 실을 풍족하게 비해 놓고 뜰 때보다, 한 올 한 올 실을 끼듯 가면서 뜨개질을 하다 보면, 완성된 편물에도 애정이 더 간다. 그만큼 기쁨 크다. 생사고락을 함께 견뎌온 동지처럼, 편물은 의미 있는 으로 안겨온다. 심하며 한코 두코 가던 축적된 시간들이 숨을 조용히 말 걸어온다. 자투리실 을 맞춰가며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뜨다 보면, 지난날 함께 동고동락한 사람들과의 진중한 시간들이 오버랩다. 그뿐 아니다. 꼬랑댕이 김밥, 자투리 김밥이 가지런하지 않다고 소풍 도시락에서 매번, 공식처럼 빼버리던 날도 소환된다. 이켜보면 알록달록 삐져나온 밥이 바로, 참신고 자유한 미적 퍼포먼스데. 밥의 라스트 꼬랑댕이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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