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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Dec 04. 2022

털실처럼만 짜도


 궁금하다.
가늘디 가는 실선이 내 손끝에서 짜여
모자로 태어날 수 있을까.



이 하얗게  때 샛노화분이 묻은 붓으로 꽃술을 찍어 정을 다. 정말 수정이 될까 의심스럽지만, 한 뼘 간격으로 핀 꽃들을 빠짐없이 찍어나가야 한다. 올바르게 수정이 되어야 튼실한 열매가 된다.

꽃이 열매로 태어나도록 하기 위하여는 계절이 세 번이나 지나도록, 애면글면  보살펴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을에 누렇고 달고 커다란 신고를 수확할 수 있다.

농부의 땀 내음이 물씬한 달고 시원한 즙이 흐르는 배맛을 겨우내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맛볼 수 있다. 호주 시골엔 그토록 달고 시원한 겨울 배맛이 없다. 그립다.



신고 배맛은 역시 대한민국, 겨울에 아삭 깨물면 단물이 입안 가득 고이는 그런 식감으뜸이다. 여긴 살을 에일듯한 매서겨울 공기도 없. 국사발처럼 넓적 잘 생긴 배가 없다. 애기 조롱박 닮은 배로 한국 배맛의 허기를 겨우 채운다.





털실로 모자를 짜는 일도 배꽃을 찍어 인공수정을 하듯,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과 같다. 꽃이 콩알만 한 초록열매가 되어 농부가 거둔 시간에 의해 성된 배로 어나듯, 털실로 모자를 짜는  또한 모기눈알만 한 사슬 하나로 시작된다. 누군의 손끝에서 씨앗만 한 사슬 수백 개가 수고한 에서 모자로 태어난다.



올 5월부터 모자와 이불을 뜨는
뜨개질을 시작하였다.


작년에는 대바늘로 트로마 테디라는 인형을 떴었다. 곰인형도, 모자도, 이불도 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털실 뭉치였다. 사람의 처음도 보이지 않는 난자와 정자로 시작되듯, 털실도 날실과 씨실이 순서대로 짜이지 않으면 그저 털실로 덩그러니 남는다.



뜨개질을 할 때 난,
매번 설렌다.



내가 뜬 이불과 모자를 누군가, 집 없고 아픈 사람이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쓸 일을 생각하며 편물을 뜨는 건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도 재미가 없으면 할 수가 없다.

나는 우선, 무엇보다, 별 것 아닌 털실뭉치가 누군가의 가슴을 데우고 몸을 보온하는 일보다, 편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즐겁고 더 설렌다. 음 단계로 이어지는 궁금증이 설렘을 선물처럼 안겨준다. 편물이 직조되는 순서는 자라나는 생명체를 보는 것과도 같다.



나의 손끝에서 모자와 이불로  태어나는 모든 편물이 무조건 이쁘다. 농부가 자식 돌보듯 배를 가꾸듯, 나도 자식 위하듯 모자를 뜨고 이불을 짠다. 내가 짠 편물이 아직 내 손에 있을 땐 나의 자식들만큼이나 다 소중하고 무조건 이쁘다. 서일까. 난 털실을 짤 때마다 가슴에서 환희의  잔잔한 파동이 인다.



이 모자 이쁘지, 이 이불 어때?
난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자식들을  딸한테 자랑하곤 한다.






딸도 내가 뜨개질을 할 때마다 색상을 맞추는 데 일조했으니 올 한 해 동안 내가 뜬 24개의 모자와 13개의 이불들에 그녀의 애정 배어 있다. 아, 생각보다 이쁘다, 하며 자기 동생들?처럼 그녀도 나의 자식들을 이뻐한다.





어쩜 우리의 생은,
털실로 짜는 모자와도 같다.



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이게 과연 모자가  수 있을까, 다. 해 모자를 스무 개도 더 떴는데 매번 드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번엔 더 이쁘게 태어나길. 실수 없이 좀 더 완벽하게 완성해야지, 하고 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다.

그러나 실수는 매번 있었다. 코빠뜨림과 실엉킴이 있었다. 심지어 뜨던 줄을 깡그리 잊고 다른 줄로 길을 잘못 들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뜨다가 잘못 뜨던 길을 풀고 다시 뜬다. 끝까지 모르고 뜬 적도 있어서 나중에야 구멍을 어렵사리 메운 편물도 물론 있다.



인생을 털실의 길처럼
살아봐도 괜찮겠다.



잘못 뜬 그냥 지나치면 완성된 편물에 영락없이 흠집이 난다. 그러니 할 수없이, 잘못을 인정하고 풀고 다시 떠야 한다.  정직하게 가야 한다. 때로는 무채색, 때로는 형광색, 가끔은 꽃밭으로 알록달록한 우리의 을 뜨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색상으로 뜨니 자유롭다.

털실은 의 바탕이 그러하항상 따듯하고 푹신하다. 우리가 어떻게 뜨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을 뜨개처럼만 짜가도, 정직하고 따스하고 느리고 인내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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