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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Aug 12. 2023

8월의 오후 데이트

- 칼리할머니와 두 번째 카페 나들이


오늘도 오후 두 시다.



차를 빼서 옆집 할머니 앞으로 다. 엷은 바지 소매 블랙 블라우스, 거기다 여름 샌들을 신은, 눈이 동그 할머니가 나오다. 이라는 차이는 겨울 옷차림에서 확연히 러났다. 할머니의 훌훌 벗은 옷을 난, 몇 겹이나 껴 입고 있었다. 브라운의 긴 바지에 짙은 청색의 긴팔 티, 그리고 재킷에 겨울 신발까지 으니. 머플러까지 둘렀다가 풀었으니. 즈가 김치보다 보온에 강한가. 그래도 오늘 내가 너, 안 추워?라고 묻지 않았다. 할머닌 늘, 나 안 추워, 너 추워?라고 눈을 동그랗게 반짝거리며 웃기 때문이다. 신 안부를 묻자, 할머닌 낫 배드 not bad라며, 풀기 없는 대답하셨다. 상태가 그리 좋은 건 아니라는 의미다.


카페로 차를 몰았다.


오늘은 내가 커피를 사고 할머니가 원하시는 카페를 가는 날이다. 할머닌 엘리엇 드비치 근처에 새로 오픈한 카페에 가보자고 하셨다. 카페이름은 모르나 가는 길을 알려주신단다. 15분을 달려서 닿은 패러다이스 빵집은 나도 가끔씩 들러, 빵을 사던 장소였다. 기서 보로 3분 안에 나타나는 해변길을 따라 걷던 용한 동네다. 이 집 빵이 맛있어서 빵이 나오는 새벽 6시에 맞춰 오기도 다. 하우스 즐비한 동네 끄트머리 가게라고는 오직, 이 빵집만 동그니 있다. 칠 전에 카페를 다시 오픈했다니, 할머니가 궁금하실 터였다


나 몇 년 전,
이 카페에 왔었어.


할머닌 커피를 마시려 했으나 아직 커피를 개시하지 못했다며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난 얼그레이 티가 없어서 잉글리시 브랙퍼스오더 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런 일에 개의치 않는다. 카페에 커피 없는 일이 별일 같은 데, 이들은 별 일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한동안 먼지가 보얗게 쌓여있던 카페를, 깔끔하게 리해 둔 장소로 들어갔다. 열 블라인드 사이밝은 햇살이 먼저  있다. 손님이 없는 한적한 자리에서 할머니와  속닥속닥, 맘껏 웃고 떠들고 있는데, 일회용 커피잔에 담긴 차와, 흰 종이봉지에다 우리가 오더 한 빵, 세 봉지를 든 여자가 긋 웃으며 나타났다. 내가 포크를 좀 달라하자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가 든 세트 두 개를 들고 와서 그녀는 또, 생긋 웃고 돌아간다. 우리도 따라 웃었다. 렇게 오늘 온 카페는 소하고, 그리고 신선하다. 베이커리와 카페의 중간 즈음인, 분위기뭔가 색다르다.


난 우리의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새것은 좋다고.


할머니도 하얀 얼굴로 헤헤 웃으, 하얀색 빵봉지를 활짝 뜯어 고소하고 달달한 빵을 맞이하였고, 난 향이 좋은 세 개의 다른 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펼쳐놓았다. 그리고 잠시 바깥 풍경이 들어왔다. 한쪽은 하우스가 촘촘한 동네요, 다른 한쪽은 르고 드넓은 사탕수수 밭이 지평선을 그리는 길 위로, 차들이 듬성듬성 지나가고 있었다. 기분 좋은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기차여행을 하는 기분이랄까. 여하튼 유쾌한 칼리여사와 난 오늘도, 명랑한 오후의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맞이한 넛과 빵도 맛있으며, 퍼스트 티도 나이스하다할머니도 흡족하고 즐거운 표정이셨다.


홍, 이전의 이 카페주인은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왔었어.


왜요, 가게를 오픈했으면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운영해야지요,라고 난 할머니 말씀을 조금 거칠게 받았다. 할머니 말씀으로, 몇 년 전 이 카페에서 안 좋은 기억이  안에서 환되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프리티 하게 꾸며져 친구와 몇 번 오던 난, 그날도 딸과 함께 와서 샐러드를 오더 했었다. 그날 요리와 함께 나온 야채는 절반은 썩은 수준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손님들 중 어느 누구도 컴플레인을 하는 사람 없이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난 약이 올랐었다.


동양인이어서 무시하나 싶었다. 음식을 먹는 둥 는 둥하고 상한 야채를 접시에 흩어놓고 나왔다. 음식값을 지불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매니저를 불러서 말하였으나, 묵묵부답. 아무 답이 없어서 어이없이 나온 후, 그다음부터 발길을 끊었었다. 할머니한테 5년 전의 그 이야기를 해드리며, 난 그날 업 셋 up set 되었었다고 했다. 그러자 유쾌한 칼리할머니, 자기는 앵그리 angry 했었다며, 아예 접시를 들고 가서 따졌다고 하셨다. 그러니 돈을 돌려주더라니, 할머니가 나보다 더 한 수 다. up set보다 그녀의 angry가 그러듯. 여하튼, 5년 전 그때는 서로 모르던 사이였던 우리가  동일한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겪고 유사한 컴플레인 했다는 사실에 난 잠시, 운명 같은 걸 느꼈다.


할머니와 나 사이에서 어렴풋이,
기시감이 일었다.


집에 돌아와 할머닌 다시 우리 집 베란다로 뜨개질거리를 가져오셨다. 주 전에 내가 처음 몇 단을 시작해 드린, 분홍색 아기이불 뜨던 그녀, 중간에서 다른 패턴을 바꿔 뜨고 있었다. 그러다 뜨개질의 길을 잃고 헤매고 말았다. 아까 할머니께서 내 안부에 답하신, 낫 배드 not bad이유를 알겠다. 가끔 나의 어눌한  영어스피킹이 꼬여 난리 블루스를 치듯, 지금 할머니의 뜨개질이 그랬다. 할머닌 답답해서 힘들었다며 웃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다. 그래도 난 푸훗, 웃음이 나와 버렸다. 결국 그녀와 같이 한바탕을 웃었다. 난 영어단어를  한 글자씩 고치듯, 뜨개질 한 코 한 코를 바로 잡아나갔다. 할머닌 나에게 뜨개질 고치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헤헤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온 탕자를 만난 듯 엄청 좋아하면서, 뜨개질 가방을 둘러메고 달랑거리며 우리 집 문을 찰칵, 따고 할매네로 건너가셨다.


오늘도 명랑한 데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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