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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Sep 15. 2023

9월의 카페 나들이

-  세 번째 카페, 1928


2023. 9. 16. 목. 2pm.



오늘은 옆집 할머니가 커피랑 디저트를 사 내가 카페를 선택하는 세 번째 나들이다. 호수와 식물원 안에 있는 카페, 1928은 나의 외손주 재영이, 재윤이를 데리고 자주 오던 곳이다. 아이들 놀이터도 있고 식물원과 호수를 한 바퀴 돌아주는 트레인도 있어서 아이들이 선호한다. 세 시에 문을 닫는다 해서 20분을 당겨서 출발했다. 이 동네에서 첫 비행사가 되었다는 힌클러가 영국에서 살던 집을 재현하여 둔, 힌클러 하우스와 그의 비행기를 볼 수 있는 히스토리컬 뮤지움이 있다. 빌딩을 지나치면서 내가 뮤지움이라고 읽자, 할머니는 우스워 죽겠다는 듯, 뮤시우ㅁ으로 발음을 고쳐주셨는데 뜻대로 잘 안되어서 서로 웃고 넘어갔다. 할머닌 우리말, 안성탕면 발음도 잘 안되니, 난 이제 나의 어눌한 영어발음에 부끄럽지도 않다. 이만 하면 영어 하는 내 얼굴에 맞춤한 철판이 깔렸.



할머닌 저만치 풍경에 퐁당 빠지셨다.


햇살 속 보랏빛 등꽃 아래 선 어여쁜 신부 사체가 되는 풍경이다. 감청색 드레스를 입은 신부포즈를 취하는 풍경은 순결하다. 반의 이 다 드러나도 어여쁘다. 카페 바깥에서 차를 마시던 손님들의 눈도 따듯하고, 봄바람 긴 머리치마깃 휘아갈 듯이 세차게 부는 건 대수가 아니라는 듯, 포즈를 최선으로 취하는 신부몸짓다.  순간 만은 이 시대 최고의 스타인 양, 주변인들의 눈길줌으로 확 끌어들인다. 카페, 1928 뜰앞에커피와 션푸룻 케이크를 앞에 두고 머니와 나도 우리의 이야깃거리를 잊은 채 그쪽으로 마음이 가 있었다. 할머니의 눈길은 부쩍, 신부의 유연한 몸짓에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할 태세다. 브로드 캐스터인 양 중계방송도 서슴지 않는다. '추운 날씨에 신부의 등이 다 드러났으니 겠어요. 신랑이 더 젊어 보여요. 보이 키가 작아요. (... ) 오 마이 갓, 신부 곁에 다른 남자가 서 있네요. 저 키 크고 마르고 멋진 남자는 누굴까요. 대체 뭔 일이에요.' 


할머닌 자신의 그 시절을 읊는 것 같았다.

 

열다섯 살에 길 건넛집 총각을 만나 65년째 같이 살고 계신 걸, 자랑스러운 인생의 업적이라는 할머니다. 럼에도 변에 누군가 짝을 차버리거나 잃고 난 후, 재혼을 하면 눈살을 찌푸린다. 너 같으면 다시 시집가겠니? 난 안 갈 거야, 케어해 주기 귀찮아, 라며 딱 잘라 말씀하신 걸 보면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극정성임에도, 그녀의 성에는 온전히 안 차는 게 분명하다. 난 할아버지가 그녀 볼에다 입을 맞추는 몸짓도, 그녀 생일축하용 가죽백을 몰래 사다가 우리 집에다 숨겨놓은 비밀도, 하고 많은 날 우리 유닛 열두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장 먼저 알고 계시는 분, 그녀 허즈번드라는 사실을 안다. 그녀로부터 할아버지의 집안일은 젬병이라는 넋두리도 들은 바 있다. 그럼에도 지난 5년 동안 한 번도, 담밖으로 큰소리가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사랑기 어린  같기도 하다. 이렇게 뭇 삶을 알콩달콩 살아내신 할머니네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노인연금을 2주에 800불(약 70만 원)씩, 각자 따로 받는다. 싱글은 1200불을 다고 하셨다. 이 나라도 개인의 생년월일마다 다른 시기, 다른 금액을 지급받는다, 어디에든 머니 앞에선 센시티브 하다.




이렇게 우리의 봄날, 9월 카페 데이트가 끝나고 있었다. 서로에게 몰입은 안 했지만, 서로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린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케이크와 콘을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그리고 보랏빛 등꽃 그늘로 걸어내려 가 벤치에 앉아서 호숫가에 내려앉아 생을 이어가는 수많은 종류의 새들을 보고, 기차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회양목나무에 찬사를 쏟아내었다. 84세 할머니는 산책하실 때 나의 팔을 붙잡고 걸어야 했다. 그러니 아주 짧은 거리만 걸었다. 몸의 평형조절이 잘 안 되어서 그렇다. 나보다 스무 살이 더 많으신 할머니를 보며 나의 미래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는 사이, 감청색 신부가 떠나고 크림색 신부가 등장하여 사진을 찍히느라, 방실방실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돌아오기 전에 여기 보타닉가든에 처음 와 보셨다는 할머니를 위하여 소로를 10km 속도로 드라이브하고 있는데, 수많은 하객이 모여들고 있었다. 잔디밭에서 웨딩을 할 모양이다. 연못을 낀 길가에 늘어선 하객들을 보면서 옆에 타고 계신 할머니, 또 읊기 시작하신다. '오, 저 클래식한 오픈카는 신랑신부가 타고 갈 차예요. 저기 저 미니스커트 아가씨, 좀 비켜주세요. 차바퀴 굴러가는 거 안 보이세요. (...) 저 아가씨는 치즈를 많이 먹었나 봐요. 엉덩이가 너무 크잖아요. 그나저나 오늘 여기서 새신부를 다섯 명이나 만났어요. 오늘은 목요일이에요.' 하며 하하 호홋, 꺄르륵.. 거리며 우린 재미나게 웃으며 보타닉 가든을 시원하게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쁜 별책부록 같은 동네 공원에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깜장 망사에 별빛 같은 노랑이 반짝이처럼 박힌 드레스를 한, 또 다른 신부와 조우하였다. 감응이 첫 번째 공원에서보다는 감해졌지만, 새 출발 하는 앳된 신부를 곁에서 목격하는 일은 여전히 반가웠다. 여하튼, 이 나라도 9월이 웨딩 하기 좋은 계절인가.


할머닌 할아버지한테 해 드릴 이야기가 많아졌다며,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활짝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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