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의 투잡에 연애 중 그녀

by 예나네


고도로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기보다 여섯 살이나 연하인 현역 호주 테크니션을 만났다니. 야외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 속 그는 내가 보기에도 스마트해 보이고 핸섬했다. 그가 속한 수십 명의 모토사이클 그룹미팅에도 함께 고, 오토바이 꽁무니에 함께 매달려서 세 시간을 줄곧 달리는 스릴도 만끽하였다니, 금 그녀 생 지난 생을 치고 달는 뉴라이프사이클다. 지난주에는 그의 노모 버쓰데이 파티에 초대받아 가족들과 상견례까지 하였다니. 문화충격일까. 나는 두어 달 전에 시작된 그녀 연애의 거침없는 스피드에 하마처럼 왕,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왕방울 만하게 툭, 튀어나온 눈동자를 한동안 어넣지 못했다. 눈알을 껌뻑이며 나의 흩어진 정신을 정시킨 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작년 11월, 그녀의 호주생 전남편을 천국으로 보내고 이 나라에선 피붙이 한 점 없는, 나보다 어린 그녀가 난, 가여웠었다. 감정의 변곡점이 완만한 그녀가, 외로워서 혼자는 안 살겠다고, 자신의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난 그녀의 연애가 이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 여인을 떻게 달래주나, 하고 나 홀로 아리랑에 우물쭈물 갇혀있는 동안 벌써, 그녀는 자기 집 곁에서 비즈니스 숍을 하고 있던 그를 점찍었다. 그러구러 그녀 망이 무스하게 현실에 맞닿았으니, 어깨에 짝 얹혀있던 그녀를 향한 짐 하나 떨구어서 왠지 가뿐한 기분이 되었다. 그녀가 빈 룸에 홀로 있는 시간에도 통, 그가 있을 테니까. 그러고 나서도 난 그녀를 만날 때마다, 호주생 그와 베트남생 그녀의 연애담을 잠깐씩 들어주는 일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늘이 걷히고 빛을 입은 그녀의 생을 듣고 있는 나에게도 행운이 든 듯했다.



그녀는 한국산 애용자다.

한국산 애용자, 처음부터 그녀가 이래서 내게 더 가깝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유과처럼 생긴 한국산 "귀리 초콜릿"이라는 사진을 문자로 보내면서, 이거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물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스낵이라고, 이 동네 한국마켓, 하이 마트에 가서 물어보라 했다. 그러자 자기네 나라에 엄청 많이 판매된다며 하이마트에 가 본단다. 그녀는 과자뿐 아니라 한국산 김밥과 설화*화장품 최고로 친다. 몇 달 전 자기네 집에 초대해서 내가 샘플 몇 개를 전해줬더니 너무 좋다 해서 인터넷 구입처를 가르쳐주었다. , 내가 한국산이라서인지 나의 얼굴 피부 좋아한다고 해서 내 귀를 잠깐 의심했었다. 이 나라 강렬한 태양이 무법자처럼 침범하여 내 살갗에다 대로 경작해 놓은, 온갖 잡티와 검버섯을 좀 보라고 얼굴을 그녀 가까이 들이밀어도, 그냥 내 낯빛이 좋다니, 한국산 중독? 인가 싶었다. 국산에 콩깍지가 씌었거나.


그런 그녀가 투잡을 뛴다.


새벽 여섯 시부터 아침 아홉 시까지 월수금, 바닷가 베이커리 숍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페이가 금의 베트남 국숫집보다 더 낫다고 씨익 웃는 그녀가 대견하고 든든해 보였다. 가, 너 언제 연애하고 언제 일하고 언제 영어 하냐고, 농을 건네자 또 씨익 웃는다. 이순이 내일모레인 베트남생 그녀가 1주일에 두 번씩 영어교실 출석에, 활발한 소셜미팅에, 투잡에, 그리고 열애까지 동반하다니, 놀랍다. 복합적 인생의 밑그림을 멀티플로, 것도 수월하게 그려내는 녀의 이 너지 넘치는 동선이 나와 정반대서인지, 참 대단하 와닿는다.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인지하고, 험난한 지점에 닿은 생을 바윗덩어리 뚫듯이 돌파해 내는 모습이 아름답다. 록 친한 벗이 아니어도 응원해주고 싶을 거다. 투잡이든 연애든 이순에 접어든 나이든, 타인을 흐뭇하게 하는 일은 생의 복을 짓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기도한다. 외로움의 속박을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자신의 해맑은 세상을 찾아 길 떠나는,


내 벗에게 하얀빛이 내리길.




Ps, "투잡"을 다음 국어사전에 치니
이렇게 나옵니다.
투잡 [two job]: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직업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것.

keyword
이전 01화 이 말의 어원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