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워.
아시다시피 이 말을 요즘은, 누군가의 감정이 지나치게 업되어있거나, 주변이 과히 어수선할 때 분위기를 평정하는 언어로 쓴다. 워~워. 난 이 말의 좀 더 진실한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왜냐하면 나의 어린 시절에 소를 멈추기 위해 쓰던 기억이 불현듯, 돋아났기 때문이다. 오호라, 반가워라. 나의 기억이 똑 들어맞았다. 워워. 이 말을 쉽사리 찾을 수 있었으니 마치, 죽마고우를 만난 듯 반가웠다. "말이나 소를 멈추게 하거나 진정하도록 달랠 때 내는 말"이라니, 내가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워워, 지금 들뜬 내 감정을 좀 추슬러야겠다.
이 감회.
80년대에 고향에 발령을 받아서 공무원을 하던 나는, 하루 원웨이 반시간을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직장에 출근을 했다. 다른 수단은 없었다. 걸어가는 길은 온통 초록이었다. 온 세상이 논이요 밭이요 산이었다. 마을의 초록담처럼 둘러싸인 산속에 50여 채의 우리 마을이 있었으니. 난 아침마다 우리 집 여남은 개의 돌계단을 다담다담 밟고 내려왔다. 맑은 물이 고요하게 샘에 고여서 마을사람들의 생수가 되던 공동우물을 통과하고, 수줍은 소녀의 볼빛닮은 사과꽃 핀 들판을 지나면 공동묘지가 나온다. 난 묘지가 무섭지 않았다. 초록의 무덤, 그 안에는 나를 지켜주시는 미지의 어느 조상님이 존재하실 것 같았다. 난 그러고도 하얀 찔레꽃이 피거나 산딸기 발갛게 익으며 계절을 알리는 자그마한 터, 황무지를 지나고도 한참을 더, 타박타박 걸어야 했었다. 분홍색 양산을 받치고 아침저녁 그, 좁은 흙길을 걸어 다녔다.
버스를 기다리던 큰 길가에 우리 논 한 떼기가 있었다. 봄이 되면 아버지는 소 뒤에다 쟁기를 달아서 이랴, 이랴, 워워, 하시며 논을 갈았다. 당시 우리 집 재산 제1호이던 그 소는, 걸음걸이도 한결같이 조신하고 참으로 순했다. 덕 있는 부잣집 맏며느리 같이 엉덩이도 투실투실하고 살빛도 털빛도 귀티가 흘렀다. 어느 해 봄부터 빙그레 웃던 아버지는, 아침에 출근하는 딸에게 소를 몰고 가라 하셨다. 논 귀퉁이 풀밭에다 소를 묶어놓고 논물에 손을 씻은 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곤 했다. 그때부터 여름이나 가을에도 우리 집 암소와 같이 출근을 했었다. 난 그 일이 보람되고 재미있었다. 아버지의 일손을 덜어드리면서, 내 출근길에 새로운 길벗이 생긴 듯... 뭔가 모를 풋풋한 게 느껴졌었다. 소의 고삐를 잡고 가면서 이름 모를 잔잔한 설렘이 가슴에 차올랐었다. 아버진 행여 소가 나대면 워~워~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럴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눈이 왕방울 같던 그 소가 정말로 착하고 순한 암소였었기 때문이다.
워~워~.
난 그저께 영어교실에서 이 말을 써먹었다. 각자 자신에 대한 글을 써서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다. 영어가 거의 퍼펙트 수준의 필리핀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다섯 쪽이나 길게 써서 읽었다. 하와이 훌라춤까지 선을 보이면서, 교실을 온통 웃음바다로 휘몰아 넣고 있었다. 그녀 다음이 내 차례였다. 웃음기와 들뜬 기운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래 난, 워 ~워~, 캄 다운, 캄 다운 Calm down이라 말하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잦아들던 교실이 다시 살아나, 하하 호호거렸다. 내 나라 사람들 코리언은 이럴 때 워~워~ 한다고 내가 다시 말했다. 그 말을 선생 린이 받아서 하는 말, 영어로도 워~ 워~,라는 똑같은 의미로 주위를 평정시킨다니. 놀라웠다.
워워,
이 말의 어원은 어디일까,
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