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은행잎 하나가 내 시간의 안전핀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끝에 딸려 온.
바삭거리며 허공을 흔들던 한 장의 은행잎이 없었다면 비통한 시간을 건너오는 길이 더 험했고, 더 에돌다 지금에 도착했을 거다. 은행잎이 뭉터기로 우수수 떨어져도, 처연히 선 채로 있는 은행나무를 마음에 들여놓고 가슴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저토록 많은 잎 중에 단 하나의 몸짓이 뭐라고’, 하며 혼잣말을 하였다. 그러다 점점 잎 하나만 떠나보내도 아플, 은행나무의 별리에 동화되고 있었다. 은행잎이 질 때마다 스스스대는 스산한 갈바람 소리가, 은행의 몸통이 내지르는 속울음 임이 체휼 되고 있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 않은가.
내 것은 손톱 밑에 가시만 들어도 온 우주가 아프듯 지독하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이기적 유전인자를 생각하며, 내 가벼웠던 독언을 얼른 접었다. 생은 이처럼 정답이 없어 모순에 처하기도 신비롭기도 하다.
우리 집 담장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모두 움직이는 존재들임을 깨닫기도 했다.
생명이란 생동하며 진화됨을, 덩굴 꽃나무가 아침마다 내게 보여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내 몸 내려놓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잠자코 있다간 저승과 이승 사이를 흐른다는 레테의 강물에다, 시간이 나를 빠트릴 것만 같아 그랬을까. 때로 울었고 가끔은 웃고 그래도 글을 썼다. 그리고 때마다 밥을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었다.
지나온 시간의 길을 돌이켜보면서, 내 시간의 등짝을 나름 잘 탔다고 스스로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 3년 반 동안의 시간을 곱아보면 그렇다는 거다.
그러다 내가 처한 상황이 이젠 좀 평범한 시간 속에 편입되길 바랐다. 성경에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으니 범사에 든다는 게 얼마나 복된 생인가.
하지만 아무리 보통을 꿈꿔보았자 평범한 시간과는 별개인, 그것의 바깥 영역에 거주하고 있다. 내 생은.
내가 올라 탄 시간의 등짝은 평범치 않았다.
동떨어진 황무지 섬이었다.
예컨대 떠난 아들을 숨 쉬듯 생각하는 어미는 평범한 생은 아니다. 그것은 눈이 말한다. 눈동자는 진실하다. 두꺼운 가면을 써 보아도 눈의 말은 속일 수 없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동굴처럼 푹 파인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자아성찰을 한다는 소위 글 쓴다는 사람이, 떨어진 은행잎 하나 잊지 못한 채 점점 폐허같이 변해가고 있는 몰골은, 스스로를 가련하게 만든다. 거울 속에서 멍하게 바라보는 저 인간이 누굴까. 낯설다. 그러나 나다. 그게 진실이다.
시간을 여전히 아름답게 타고 있는, 우리 집 담을 타고 오르는 분홍과 하얀 꽃들은 창문을 통해 아침마다 내 눈에 들어온다. 수십 송이씩 다시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그 꽃잎을 쓸어 담아 나무 밑에 다시 묻어주는 건 나의 몫이다.
매번 꽃나무는 아무 일 없던 듯, 어여쁜 모습 그대로 초연하다.
꽃잎 수 십 송이를 하루아침에 떠나보냈음에도, 꽃나무는 폐허의 몰골이 아니다. 타자의 페르소나 속에 감추어진 진실처럼, 벌레에 먹혀 초록 망사 같던 깻잎 또한 폐허의 시간을 제 본연의 초록으로 채워놓는다.
그러나 갉아 먹히던 그 시간 속에서 시들시들 시들어 가던 깻잎들의 시름들을 나는 기어이 기억한다. 끝내 잊지 못한다. 벌레의 이빨에 제 온몸 찢기던 그 깻잎의 몰골들.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며 시름시름 앓던 깻잎의 시간이 곧 나의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일일이 열거치 못할 시린 시간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타고 시시때때로 시간을 침범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살아야 할, 살아내는 힘이기도 하다. 무엇인가가 포맷되어 다시 세우는 일은, 험난하면서도 그만큼의 성취감을 불러오는 일이다.
어느 날 보니 깻잎은, 순전히 내 손길로 보살핀 시간 속에서 재생했다. 물 주고 비료 뿌리고 벌레 잡고 잡초 뽑던 나의 시간이, 우리 집 담장 위의 꽃잎과 담장 밑 깻잎의 시간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꽃잎을 아침마다 쓸어 담은 내 손길과, 깻잎 속에 벌레를 잡아주던 내 존재의 숨결이 녹아 있었다. 그렇다고 고통이라는 비애가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건 아니었겠지만, 그들은 나라는 존재가 있어 피어나고 자랄 수 있었다. 그건 나 혼자만 비통에 처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선언한 푸른 증명이기도 했다. 다 아팠음을. 깜깜한 밤중이 외롭기도 했음을, 침묵의 몸으로 증거 했다. 꽃과, 들깨, 그리고 어쩌면 당신도.
모두 다 동일한 시간 속에서 아프다.
범사. 평범. 이런 건 지나온 시간이 시리던 사람들한테 적용됨을 깨달았다. 아프지 않아본 사람들은 오히려 범인의 삶에서 비껴 가 있음을, 꽃잎과 깻잎이 내 귓속에서 소곤소곤 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모두 제 시간의 등짝에서 올라 제 시간을 타고 시간을 달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나의 아프고 불편한 시간들을, 그들은 그리 괴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게 홀가분하고 편했다.
그저 한 꽃이 떨어지니 그 곁의 다른 한 꽃이 또 튼실하게 피어나는 게다. 남은 꽃의 건장함을 빈다는 빌미로, 꽃나무는 고통을 감내하고 시간의 등짝 위에 올라타 나머지 꽃을, 시간의 순서대로 분만하는 게다.
분만,
그 진통의 시간은
꽃나무의 어쩔 수 없이
감내하는 숙명 같은
힘인 게다.
- 3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