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이어폰을 아이폰으로 잘못 읽었다. 때마침 아이폰을 주제로 글을 써볼까 만지작 거리던 생각의 파편이 떠올랐다. 그렇게 아이폰이 오늘의 글의 주제가 되었다. 이렇게 우연에 기대어 선정된 글감이 어떻게 손질되어 나갈지가 첫번째 관전 포인트. 두번째 포인트(같은것이 있다)라면 과연 이 글이 그럴듯한 결말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요즘은 시작만 하고 관두는 글이 워낙 많아서 끝까지 걸어내는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대단한 성취처럼 느껴진다. 도착하지 못할지라도 닻을 올려보자.
닻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이폰 17은 해변가에 난파된 선박같다. 평평한 책상에 올려둔 아이폰을 눈높이를 낮춰 바라보면 미세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사실 돌출된 카메라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자명할 사실이라고, ㄴ을 ㄹ로 바꿔야만 하겠다. 머릿속 세계에서 분명한 것이라도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야 최종적으로 신뢰하게 된 것은 건축이 나에게 준 선물 아닌 선물일 것이다.
카메라가 폰 후면 좌측으로 몰려있으니 당연히 평면에 놓인 몸체는 그 반대인 우측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막상 눈높이를 아이폰 후면커버까지 낮춰 유심히 바라보면 기울어진 정도가 확연하지가 않다. 그게 문제다. 내 눈썰미의 문제일수도 있고, 혹은 내면의 의심병이 내 눈대중을 흐리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불처럼 명확한 답을 내려주는 것은 카메라가 있는 폰 상단이 아니라 하단을 관찰하는 것이다.
테이블에 놓인 폰 상단은 카메라 때문에 좌 우측이 모두 붕 떠있는 모양새다. 그래서 의심병이 도진 입장에서 좌측의 높이가 높은지 우측의 높이가 높은지 아리송해 보이기가 쉽다. 그 아래로 아른거리는 그림자의 희미한 윤곽선도 한몫한다. 그러나 그 반대편인 폰 하단은 다르다. 튀어나온 카메라와 함께 지면에 직접 접촉하는 유일한 두 개의 포인트 중 하나가 바로 폰 하단부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접촉 지점은 폰 하단 중에서도 카메라의 반대편인 우측이 되겠다. (*폰 후면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의 좌/우 기준)
이렇게 폰 하단 우측이 지면에 닿아있는 모습은 폰 하단 좌측이 상대적으로 붕 떠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흡사 캔틸레버와 같다..!) 있는 공간과 있는 공간을 비교하는 일에 비해, 없는 공간과 있는 공간을 비교하는 것은 이렇게나 수월하다. 그렇게 시각적으로 이미 명확한 기울어짐이지만 재확인은 늘 유의미하다. 재차 확인. 더블체크라는, 영어로 먼저 습득한 그 단어가 몸에 완전히 베도록 만든 장본인 역시 건축이 아니면 누구이리오. (이리오라는 어말어미를 사용해 보고 싶었다.)
시각적 검증을 마친 뒤 이뤄지는 이 더블체크는 촉각과 청각을 기반으로 한다. 우선은 촉각으로 시작. 폰 몸체 하단의 착 달라붙은 쪽 반대편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러본다.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누르는 힘에 따라 몸체가 하강하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촉각으로 촉발된 폰 모퉁이의 하강은 청각적 더블체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듯이, '칵'하고 붕 떠있던 모퉁이가 지면에 안착하는 소리가 그곳에 공간이 있었음을 한번 더 증명해준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건데 한쪽 모서리는 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이폰 17이 해변에 난파되어 기울어진 선박과 같다는 나의 견해에 두가지 근거가 더해졌다. 기존의 근거는 시각 -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진 두번째 근거는 손가락으로 눌렀을때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는 것. 세번째는 가벼운 충돌의 소리가 발생했다는 것. 이렇게 세가지의 이유라면, 고작 두 개의 접촉점으로 몸체를 지지하는 아이폰17 후면 따위의 불안정한 구조를 탈피할 수 있다.
이제는 잠들어버린 내 아이폰 SE 2세대가 살아낸 5년의 역사가 철문처럼 두꺼워진 카메라의 두께에 고스란히 담겨있지 않나. 덕분에 좀처럼, 아니 아무리 내리 눌러도 사라지지 않는 틈새 공간이 생겼다. 한쪽을 쿡 누르면 반대편이 붕-, 다른쪽을 콕 누르면 다시 그 반대편이 붕-. 붕-붕-뜬 모서리를 놓아주면 곧 파르르르 떨리는 몸체. 덜그럭 덜그럭 파르르르. 이어폰을 아이폰으로 잘못본 것도 파르르르 떨리는 역사에서 떨어져나온 하나의 파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