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잡지의 이름은 라라. L로스 A앤젤레스 R리뷰 오브 A아키텍쳐. 매거진의 이름이 라라라니. 라라(라는 잡지)라고, 부러진 연필심으로 적어본다. 라라라는 두글자. 아니 네글자.
연필이 연거푸 이렇게 부러지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예쁘게 깍아놓은 연필 끝이 가방을 열어보면 꽥 하고 꺽여있다. 몇일 전엔가 퇴근 후 집에서 한번. 집에서 가방을 열지 않은 그 다음날, 회사에서 또 한번. 오늘 집에서 열어본 연필이 다시 한번 꽥 하고 꺽여있었다. 유난히 길게 깍는 연필심 탓인줄 알고 그 길이를 반으로, 또 반의 반으로 줄였건만 오늘도 이 연필은 부러져 있어야만 했단 말인가.
정성들여 곱게 만들어 둔 것이 뿌리 뽑힌 나무처럼 꺽인 모습을 보았을 때 느꼈던, 그것은 분노라기 보다는 슬픔 아니었나 싶다. 왜 꺽인거냐고 묻고 싶었던 마음을 돌이켜보면 그렇다. 그렇게 꺽이고, 꺽이고, 또 꺽인 뒤에야 나는 연필심을 집어들었다. 마치 돌치고 물렁하던 그 희끗한 석회질의 돌맹이로 철판 바닥에 낙서를 하던 어릴적 그 꼬마처럼 말이다. 1센티미터가 채 되지않는 꺽여버린 연필심이건만, 메모를 휘갈기는 필기감엔 예상 밖의 리듬이랄게 깃든다. 꼭 길어야만 연필인건 아니었다.
아니 그럴거면 처음 부러졌을때, 오늘의 그것보단 훨씬 길었던 그 연필심을 붙잡고 그냥 쓰지 그랬어? 그때에는 부러진 연필심이란 그저 부러져버린 것으로만 여겼던 탓일 것이다. 꺽여버린 존재에 무슨 생기가 남아있겠냐는 생각이 채 언어의 옷을 입기도 전에 나를 낙담으로 이끌었던 탓일 것이다. 진부하지만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연히 내 연필 부러진 얘기가 내 얘기 아니면 누구의 이야기이겠냐만, 누구나 어느 정도는 연필이라는 점에서는 조금 다른 얘기다.
이 브런치 북이야말로 또 하나의 꺽인 연필심이다. 아니, 그야말로 꺽이고 또 꺽인 연필심이라고 해야겠다. 브런치 북의 제목은 민망하게도 '미국의 건축 비평가 도전기.' 페이지를 새로고침 하고 봐도 정확히 그런 제목이 틀림없다. 아직도 술에 취해있을리 없으므로. 그 스타벅스 텀블러에 얼음 두개와 함께 찰랑이던 보드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으므로. 어느 정도는 내 혈액 속에 흡수되고, 어느 정도는 몸 밖으로 배출되고 말았을 것이므로. 이내 이 집의 배수관을 타고 로스앤젤레스의 도시 정화 시스템에 뒤섞이고도 남았을 시간이므로.
지난 주말의 음주, 그것은 파티라는 무시무시 - 정말 무시무시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음주였다. 음주도 싫고, 파티는 더더욱 싫지만 좋은 건축 잡지의 론칭 탓에 어쩔수가 없었다. 조금 덜 싫어하는 것에 기대어 조금 더 싫어하는 것 속으로 뛰어들기로 한게 나의 맨정신의 결정이었다. 그놈의 맨정신은 40도짜리 보드카를 들이켜봐도 그러나 부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나 쉽게 연필은 부러지더니 왜 부러지라는 맨정신은 부러지지 않는가. 몇 모금 남지않은 그 액체 속에서 얼음 두동이가 칼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음 위에서, 의아하지만 보통과는 달리 파티장에 가까워져도 느려지지 않는 보행 속에서, 아직 나는 왜 맨정신인가 하는 꼿꼿한 착각 속에서, 나는 이미 레이븐힐 스튜디오 내부에 들어와 있었다.
캄캄해진 극장에서 대체 연극이 언제 시작되는건지 알 수가 없을 때, 연극은 대체로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게 맞다고 누군가 말했다. 이미 연극은 막이 올랐고, 한두모금 남았던 보드카는 누군지 몰라도 다 마셔버렸고, 맨정신은 애시당초에 꺽였고, 뭔가를 낭독하던 이에게 셀 수 없는 박수를 보내고, 기억할 수 없는 오백개의 얼굴에 섞여 증빙할 수 없는 말들을 내뱉고난 뒤라면, 오지않는 버스에의 원망이 무색하게도 이미 집을 향하여, 단 평생 맡아본적 없는 냄새가, 코로는 모자라 눈동자까지 찔러대는 냄새를 몰고 온 노숙인이 옆자리를 차지한 버스 안이라면, 그렇다고 해서 숨쉬기를 멈출수가 있겠느냐 하는 질문. - 아니 1센치도 안되는 부러진 연필심을 그것이라도 기꺼이 집어 들었듯이, 냄새가 닿지 않는 코 앞 1밀리미터의 그 공기라도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불굴의 수사적 의문을 던지며 글을 마치고 싶지만, 그게 뜻대로만 된다면 그건 우리들의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만 재차 확인하게 되는건 왜인가. 그 냄새는 왜 술보다, 아니 불보다 빠르게 번졌던가. 그 냄새는 왜 극장에 입장도 하기 전에 시작돼버린 연극처럼 들이닥쳤던가. 라라에 대한 아무런 결론없이 횡설수설 끝나가는 문장은, 아직도 어딘가에 고여있을지 모를 취기 탓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건 왜인가. LARA. 이렇게 타이핑하며 내려다보는 자판에 한글이 없는건 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