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는 건축과 줍는 건축에 대한 글-줍기

by 가소로

더는 고삐를 부여잡고 있을 수 없을 때에야 문장을 짓기에 이른다. 그렇게 보면 언어는 질서를 구축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분명하다. 누구나 머릿속에 단어들을 갖고 있다. 떠다니는 단어들을 붙잡는다. 붙잡은 단어들을 하나씩 써나간다.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언어를 수단으로서 언어 자체에 대해 쓸만큼 숙련된 언어공은 아니라는걸 안다. 이 문장만 봐도 그렇다. 언어를 수단으로서 언어 자체에 대해 쓴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좀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언어에 대한 언어를 짓는다는 말이다. 이 문장을 봐도 그렇다. '언어에 대한 언어'라고 간추려 쓰는순간, 그것이 연어에 대한 연어라고 읽히다니 말이다. 버젓히 언어에 대한 언어라고 써놓고 그걸 어떻게 연어에 대한 연어라고 읽게 되는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나역시 그게 의문이니 말이다. 그러니 언어라는 틀 속에서 그 자신으로서의 언어 자체를 들여다 보는것은 어떤 식으로든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거울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 하고 얘기해도 좋을 것이다. 반드시 잘생기고, 혹은 못생겨서가 아니라, 한번 거울을 보기 시작하면 끝없이 거울만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거울속엔 현실과 그대로의 모습이 비치지만 사실은 평평한 허구의 이미지라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마치 지금처럼 언어에 대해 쓰고 싶은 언어를 구체적인 단어로서 붙잡을 수는 없게 되는 그런 함정이랄까. 언어를 통해 언어를 바라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보이지만, 막상 그것들을 하나씩 붙잡아 써나가려 마음먹으면, 마음먹어봤자 두 손에 걸리는 단어가 없다. 그러니 언어를 통해 바라보는 언어란 거울과 같은 세계임에 틀림없다. 진짜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언어가 아닌 것들 - 내 얼굴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보일 뿐 사실은 유리처럼 차갑고 반짝이는 평면에 불과한 모습과 같은 것들.


이렇게 거울에 빗대어 표현하면 그럴싸하지만, 막상 그 실체를 직접 바라보자면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말하자면 앞선 세문단에 걸쳐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언어에 대한 언어니, 거울이니 하는게 다 무슨 의미인가. 몇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명확해질 일이다. 첫번째 질문, 그렇다면 언어에 있어서 거울 밖의 진짜 세계란 어떤걸 말하는 걸까? 두번째 질문, 그 이전에 언어에 있어서 거울속의 세계란 또 대체 무엇일까?


종종 언어는 사실 강처럼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백지같은 공간에서 타이핑을 하면 자모가 하나씩 조합되어 생겨나는게 언어의 본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미 어떤 식으로든 조합된 무수히 많은 단어들, 혹은 어절들, 혹은 어구들, 혹은 문장들이 온통 섞여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강이 있다는 생각.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세계에서 언어는 무에서 형태소가 하나씩 조립되어 생겨나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에서 언어는 이미 조립된, 엄청나게 다양한 형태와 정도로 조립되어 쏟아지듯 혼돈 속에 흐르고 있다는 그런 생각.


그런 의미에서 글짓기는 사실 글-짓기라기 보다 글-줍기에 가깝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게 아니라, 있는 많은 것들 중에 몇몇을 건져내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위에서 적은 내면 속 언어의 원형 가설을 받아들인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무수한 말들이 강처럼 흐른다. 누군가 말이 없다면, 그건 사실 너무 많은 말들이 한데 뒤엉켜 손에 잡히는 말이 없다는 말일수도 있다. 없음과, 너무 많아서 따로 떼어낼 하나가 없음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건축이 언어의 세계로부터 이런 저런 것들을 빌려오던, 혹은 주워오던 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구조주의라거나 후기구조주의라거나 하는, 말로만 들어도 모른채 흘려보내고 싶어지는 이름의 시대라면 오히려 지난지 오래인게 다행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언어의 예술이라는 문학을 전공한 일인으로서, 그리고 고삐를 놓치고 싶을만큼 달리는 건축 등에 올라탄 일인으로서, 건축의 짓기 역시 줍기에 가깝다고 우기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쓸데없이 아름다운 문학을 전공한건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언어를 통해 언어를 바라보는 일처럼, 혹은 거울 속의 이미지에서 실존하는 나를 찾는 일처럼, 알 수 없고, 볼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답 중 하나일게 틀림없다.


우리말의 체계 속에서는 언어도 짓고, 건축도 짓는 것이다. 언어가 짓기보다 줍기에 가깝다면, 건축도 그렇다는 말을 하고 싶다. 건축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건물을 창조하는 -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미 있던 공간을 잘게 나누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관점으로 봤을때 없다가 생겨나는 공간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비어있는 공간에 대해선 이정도 하고, 콘크리트나 목재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건물 몸체는 어떨까. 흡사 없던 벽체를 세우고, 없던 지붕을 덮는 것 같지만 이것 역시 창조는 아니다. 이미 지구 어딘가에 있던 것의 위치를 바꾸어 놓는것 뿐이다. 좀 더 보태자면 있던 것을 조금 변형하고 변질시켜 옮겨놓는 일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구분되지 않아 무지막지하게 커다랗던, 그래서 있는지도 몰랐던 텅 비어있음을 잘게 나누어 줍는 일. 혹은 어딘가에 무질서하게 마구 흩어져 있던 물질들을 주워서 질서 정연하게 모아놓는 일. 둘을 합쳐 말하면, 물질들을 주워 모아 큰 공간을 분할하는 일이 곧 건축이다. 이제는 건축을 통해 언어를 들여다 보자.


어쩌면 언어의 세계에서 공간이란 엄청나게 크고 긴 괄호인지도 모른다. 혹은 마침표와 마침표 사이라거나, 쉼표와 쉼표 사이라거나. 그렇게 비어있는 기호들 반대편에는 말이 되거나 말도 안되는 무수한 언어의 조합들이 이리저리 엉켜 흩어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엉켜 천천히 흘러가는 언어의 파편들을 바라보자. 바라보는 나로서는 이런저런 유의미한 조합들이 눈에 걸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내가 손을 뻗어 가지를 쳐내고 괄호 속에 가지런히 배열하기 전까지는 타인에겐 읽혀질 수 없는 조합들이다.


없는 것으로부터 만들어내는 것 - 즉 짓는 것이 언어이고 또 건축이라면 그건 참 기적같은 일일 것이다. 놀라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단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어색한 면이 있다. 하지만 줍는 것 - 어지럽고 쓸모없이 퍼늘어진, 그렇게 뒤죽박죽 흘러가는 흡사 쓰레깃 더미와 같은 것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가져와 만드는 것이 언어이고 건축이라면 어떤가. 기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여과없이 말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게 무슨 생고생이냐는 것. 어떤 쓰레깃 더미에선 고약한 냄새가 날테고, 어떤 고철 더미는 들추려 해봐야 꿈쩍도 않을테고, 또 어떤 것들은 먼지에 먼지에 만성 비염을 향한 직항편일테다. 그런 곳에서 말을 하나씩 줍고, 재료를 하나씩 주워서 쌓아 올리는 일, 그래서 마치 없는 곳에 창조된 것처럼 보이는 문장의, 혹은 공간의 완성을 향해가는 일이라면 어떨까. (그런 일이라면, 그런 일이야말로 참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당신도 나와 같은 말을 주워서 이 공백을 채우려는 생각이었을까.

keyword
팔로워 27
이전 11화건축을 향하여 부러진 맨정신의 라라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