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골프 POV 09화

쓰레기 태우는 농부

Parahyangan cc 근처 / 인도네시아 반둥

by 달을보라니까

2만 여개의 섬에 흩어져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던 사람들이 어딘지도 모를 먼 곳에서 큰 배에 대포와 총을 싣고 온 지배자들에 의해 하나의 제도에 묶이게 됐다. 원주민들의 주식인 쌀을 심을 땅에 향신료나 커피를 경작할 것을 강제하는 정복자들 탓에 주민들은 식량부족에 시달렸고 점차 땅을 잃고 살 길을 찾아 떠나야 했다.


사람들이 떠난 넓은 땅에 골프장이 들어서고 번듯한 고급 주택가가 들어섰지만, 떠나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은 자투리 땅을 찾아 농사를 지었다. 아들도 손자 그리고 그 다음 세대도.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빈 곳에는 어김없이 농작물이 자라고, 층층이 흙을 쌓아올려 만든 다랑논은 골프장의 경관이 됐다.


코스 주변에 드문 드문 연기가 핀다. 놀러 나와서 느긋한 골퍼들과는 달리 4월 말 인도네시아 농부들은 땅을 갈아 엎고, 잡초를 뽑고 농사를 준비한다. 분주한 그들의 손놀림이 지나간 곳에는 풀뿌리 같은 것들의 무더기가 모이고, 작업을 마친 농부가 돌아와서 불을 붙힌다. 그들에게는 가장 빠르고 저렴하며 효과적인 방법인것이다.


한동안 싱가폴과 주변 나라들은 대낮에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먼지와 헤이즈에 시달렸고 며칠씩 휴교령도 내려졌다. 그 원인이 추가 경작지 확보를 위해 인도네시아 밀림에 불을 지른 기업형 거대 농장들 때문이라는 뉴스가 연일 나왔고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꽤 많은 경제적 보상을 댓가로 더이상 경작지를 늘이기 위해 화전을 하지 않겠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가족들 먹고 살고 남은거 팔아서 생필품을 조달하는 가난한 농부들은 대상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일회성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매번 나오는 쓰레기를 종류대로 분리수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운없게 단속에 걸리고 벌금이 누적되면 그들은 더 깊숙한 산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탈탄소, 환경보호는 너무 멀다.


티박스 뒤에 있는 밭에서 쓰레기를 태우며 열심히 농사준비를 하는 남자가 보인다. 아무쪼록 올 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 내년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그러다가 언젠가는 더이상 쓰레기를 태우지 않아도 가족 건사하며 먹고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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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