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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끝에서의 삶

세계 끝의 버섯 / 애나 청 / 현실문화연구

by 달을보라니까


제목만큼이나 어려운 책이다. 처음에는 생태에 대한 책이라 생각하며 쉽게 시작했다가 읽는 내내 미로를 헤맸다. 물론 내 독해력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저자가 고안하여 사용하는 개념들이 혼란을 준다. 번역 이슈인가 해서 원문을 찾아봐도 그리 도움이 안 됐다. 전반적인 분위기와 논점은 알겠는데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선명하지 않다.


"의도하지 않은 경작"인 버섯은 폐허에서 자라난다. 산불로 폐허가 된 산이나, 전쟁으로 핵폭탄으로 우리가 알던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서 버섯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자본주의에서 밀려나거나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명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록키산맥 어느 곳에서 그런 버섯을 채취한다. 소나무, 버섯 그리고 인간은 의도하지 않게 서로를 경작하며 자본주의의 끝에 존재한다. 인간과 비인간이 겹쳐서 살아가는 풍경이 매우 흥미롭다.


책표지에 숲 모양을 그릴 수 있는 최대한 길게 그렸다. 버섯과 자본주의에 대한 책이지만 표지에는 나무만 그렸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나무와 숲보다 더 넓고 촘촘하게 버섯과 포자가 있고,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가 모든 사물과 사건들 사이에 촘촘하고 꼼꼼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표지다.


덜렁 버섯그림을 표지에 그린 영어본 표지와 비교하면 백배는 잘 만든 표지다. 이 책이 잘 팔려서 언젠가는 저자가 한국의 번역자와 출판사에 감사합니다하고 꾸벅 절을 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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