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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보라니까 Oct 31. 2023

#3. 아라비아의 로렌스

스콧 앤더슨 / 글항아리


노골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책표지다.

당연하다. 미국인 작가 + 영국인 주인공 + 20세기 초반+ 중동 배경이니까.


하지만 한글판 표지를 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왜 저들을 따라할까?


네 명의 주요인물은 각자의 신념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목숨을 걸만큼. 그러나 그들의 신념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안녕과 번영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직 제국주의 자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주인공인 로렌스가 지역민에 대한 연민이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도 해당 지역의 인종이나 언어, 종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도에 자를 대고 국경선을 그은 자들을 위해 일했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분쟁과 살상은 네 명의 주인공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에 기생하는 이들이 만든 것이다.그리고 지금 이 책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읽는 저들의 후손들은 이 책을 선조들의 낭만적인 대활약이나 영웅전으로 읽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식민 지배를 경험한 우리도 저들처럼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한글판 책표지는 서구인들이 보는 중동의 모습인 낙타 탄 사람들의 행렬인 것일까?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이 사진이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서 전달한다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중동을 보는 시각이 서구인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전형적이고 편향된 표지가 제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피식민지의 기억을 안고 사는 우리는 왜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하는가? 중동은 최초의 문명이 태동한 곳아닐 뿐 아니라 중세 유럽의 무지몽매함이 모두 태워버릴 뻔한 지식을 간직하고 발전시켜서 다시 유럽으로 되돌려 준 전통과 문명이 있는 곳인데 왜 우리의 시선은 모래사막을 건너는 낙타행렬에 고정되어 있나?


2023년 10월,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유혈사태에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심정적으로 응원한다. 어쩌다가 저 동네는 맨날 서로 죽고 죽이냐며 똑똑한 한 마디를 하면서. 하지만 저들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으며, 그들의 고통과 절망에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적으로 게으른거다. 

이 책표지는 그 지적 게으름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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