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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보라니까 Nov 04. 2023

#6. 집단착각 - 5개국 표지 비교

토드 로즈 / 21세기북스


글로벌 베스트셀러는 책표지 맛집이다.

같은 책이 여러 표지로 출간되니까, 저자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의 출판사 담당자들이 어떤 고민을 했을지 짐작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나라 책들도 개정판이나 리커버판에서 책과 우리가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지 보는 재미가 있지만, 그런 기회가 흔하지 않을뿐더러 기존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는 모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다.


"집단착각"은 똑똑한 개인들이 집단적으로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공동체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저자의 분석과 대안이 얄팍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에 먹힌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얼굴로 출간됐고 결과적으로 책표지 맛집이 됐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책표지를 잘 만든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깨닫게 된다. 그 책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저자의 요구사항도 맞춰야 하고,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 그리고 타겟 독자들의 취향과 지적수준 등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그야말로 고난도 종합예술이다. 그만큼 재미있고.


1. 미국판

선이 굵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표지다. 제목을 큰 글씨로 강조하고 그 위에 약간의 부제 혹은 관제를 달아서 제목을 읽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특정방향으로 유도한다. 그리고 성냥불이 옆으로 옮겨 붙는 이미지는 책의 취지를 아주 잘 반영한 듯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모두 다 홀랑 타버리게 된다는 것까지 매우 직관적이다. 


역시 원본이다. 아마도 표지 제작에 저자가 개입했을 것 같다. 



2. 일본판

 편집자의 적극적 개입이 눈에 띈다. 눈의 띌만한 문구들 잘 뽑아서 넣고, 그래픽도 새로 만들었다. 참 열심히 했다. 달리 말하면 책을 팔고자 하는 노력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 표지는 책의 취지를 주제를 담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표지에 사람 모양 2개를 겹쳐서 그렸다. 크고 흐릿한 하나는 배경으로 쓰이고, 배경의 중심에 그려진 작고 또렷한 다른 하나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집단에 순응하고 충성을 다하는 일본인들이지만, 내면에는 자신만의 단단한 자아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 오랜 전란과 군국주의를 견뎌 살아남기 위해 일본인은 국가나 회사 혹은 유사한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왔고, 일본은 키 작은 작은 풀의 나라가 되었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불꽃이 있다 뭐 이런 식으로. 근데 이 메시지는 책의 취지를 오도한다.


게다가 '남에게 영향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 3개' 등등의 문구가 추가되어 있다. 글쎄, 이 정도면 이 표지의 목적은 저자의 취지를 전달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출판사는 이 책을 자기계발서로 팔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암튼 빵점이다. 


3. 오디오북 표지

(이 표지는 국적 확인이 어려웠다. 독일인것 같은데 결국 확인 못했다. )


넘어지는 도미노에 저항하는 이미지와 빨간 바탕색이 강렬하다. 하지만 이 표지에서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도미노의 구조와 조건은 그대로 두면서 개인에게 굳세어라, 버텨라 요구하는 하는 게 옳은가? 그리고 가능은 한가? 도미노가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간격을 넓히거나 밑단을 튼튼하게 만드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4. 대만판 

표지에서 이미지를 없애고 텍스트만 남긴 게 특이하다. 깔끔해 보인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중국시장을 감안해서 당국의 심기를 거슬릴만한 여지를 없애려고 했을까? 대만은 정자를 쓰고 중국은 약자를 쓰니까 이 책이 직접 중국시장에 팔릴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할 텐데 왜 이렇게 했을까? 중국어권 독자들은 이미지보다 텍스트를 더 좋아하나? 안 그럴 텐데. 미스테리다. 



5. 한글판 

붕괴하는 역삼각형 위에 있는 자유분방한 사람들 이미지는 책의 취지와 매우 다른 메시지를 보낸다고 생각한다. 통제받지 않는 자유는 그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자칫 반민주주의 함의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건 저자의 주장도 아니다. 


집단속의 개인은 자유롭지 않으며, 집단의 압력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결과적으로는 그런 눈치 보는 행위들이 모여서 잘못된 사회적 / 정치적 결정을 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과연 이 표지에서 읽어낼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영양가 없는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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