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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보라니까 Nov 10. 2023

#19.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셀 투르니에 / 민음사


간단한 서지정보와 사진 한 장이 전부인 깔끔한 표지다. 문학전집인 만큼 표지양식은 모든 책에 공통적으로 쓰고, 사진이나 이미지는 이 책을 위해 따로 만드는 게 아니라 상업용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서 표지 만드는 품을 최소화했다. 심플한 디자인 덕에 세월을 덜 타고, 여러 권 모아뒀을 때 느껴지는 어떤 뿌듯함이 있다. 책등에 인쇄된 저자 사진들이 쭈르륵 줄 서있는 것도 재미있다.


김광석이 오래된 노래를 꺼내다가 원하는 방식과 목소리로 다시 불렀던 것처럼, 미셀 트루니에는 로빈슨 크로소를 다시 썼다. 그가 보는 세상의 모습으로. 이 과정은 다분히 공학적이다.


이미 유명한 책의 큰 줄거리 안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는 편미분을 거듭해서 다변수 함수의 해를 찾는 찾는 것이나 시나리오 분석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작가는 여러 번 자신의 손으로 머리로 시나리오들을 돌려보면서 다양한 조합을 시도해 봤을 거라 짐작된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작업은 '수공업적'이라 말하곤 했고,  방드르디가 주변의 물건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필요한 것들을 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런 점은 그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레비 스트로스의 '손재주꾼의 작업'과 맥이 닿아, 그의 사상적 계보는 물론 책에서 보여준 그의 서구문명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추측할 수 있는 공학적 실마리를 준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아직 남아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문명의 물건과 섬에서 경작한 모두를 날려버린 폭발이 없었더라도 방드르디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방드르디는 자신이 교육시켜야 할 야만인이 아니라고 선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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