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딘 슈레딩거 / 한울
원전을 읽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슈레딩거처럼 현대물리학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쓴 책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으려면 더 그렇다. 다행히 책은 짧았고 우려했던 난해한 수학이나 양자역학이 필요하지 않았을뿐더러, 나 같은 일반인도 이해할 만 했다.생물학 책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살아있는 유기체 내부의 시간과 공간에서 나타나는 생명현상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를 고민한 책이었다.
생명체가 안정적으로 후대를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지킬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하며, 그 구조는 물리법칙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이 책의 주된 포인트다. 달리 말하면 열운동의 무질서 혹은 공격으로부터 유전자를 지켜내는 단단한 구조가 원자단위에서 존재할 것임을 예상한 것이다. 지금에야 이중나선구조가 물분자의 예측불가능한 브라운운동으로부터 유전자를 지킨다는 것이 밝혀졌고 과학계의 상식이 되었지만, 유전자 구조에 대해 모르던 1940년대에 이런 추론이 가능했고 옳았다는 게 놀랍다. 동시에 인간은 자신의 지적, 인지적 한계 때문에 나누고 구획지어 생각하면서 마치 진리인듯 여기지만, 자연은 그런 구분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연과 우주가 반드시 인간에게 설명되고 납득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듯이.
표지가 무척 재미있다.
흑백 펜으로 그린듯한 그림이 슈레딩거의 긍금증 가득한 표정을 아주 잘 살렸다. 이 표정에는 과학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호기심 genuine curiosity가 담겨있다고나 할까? 그림 옆에 있는 제목 "what is life"는 그의 머리속이 있는 질문이 툭 튀어나온것 같다. 책이 출간될 당시에 60대 중반이었을 슈레딩거가 호기심과 질문을 잃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 매우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