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을보라니까 Dec 09. 2023

#12.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 현대지성


많은 사람이 질문했다. 

기술은 발전하고 생산력이 높아지는데 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냐고. 


답은 찾아지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에 그들이 서있는 위치가 달라지면서 사람들은 떠났고 질문은 잊혀지고 가려졌다. 헨리 조지는 평생동안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가난하게 자란 그는 다른 사람들의 가난과 고통에 연민과 동정심을 가졌고 평생을 바쳐 대중을 빈곤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연구했고 정책과 정치로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존경받을 인생이다. 그의 질문은 150년 전에 유효했고, 2023년 지금도 핵심된 질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답변되지 않는다. 오히려 헨리 조지라는 이름은 욕받이가 되었고, 그의 이름은 엉뚱한 곳에 불려나와 공개적으로 매를 맞고 절둑거리며 퇴장한다. 


헨리 조지는 억울하다.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는 토지, 노동 그리고 자본으로 대별된다. 노동과 자본은 생산에 기여한 바에 따라서 과실을 나눠받지만, 토지가 받는 몫인 지대 rent는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소유권에 따라서 결정된다. 정당성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토지는 희소할 뿐아니라 위치 혹은 입지라는 독점적이고 대체불가능한 속성 때문에 토지의 가격상승폭은 다른 생산요소의 상승폭을 상회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생산력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달해도 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의 분석과 처방이 틀려서가 아니다. 또한 사람들이 서 있는 위치에 따른 작은 기득권의 갈등 때문도 아니다. 인간의 사고체계와 사회의 작동원리가  근본적으로 불평등을 전제로 구성되고 진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땅의 소유권이나 조세제도를 혁신적으로 변경한다고 해도 곧 또다른 불평등을 만드는 반동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헨리 조지는 경제학자를 넘어서 마치 종교인이나 철학자같은 말을 한다. 물질적인 변경에 더해서, 정신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인간의 고통을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불법복제본으로 이 책을 처음 접했다. 오래전 일이다. 그 당시에는 이 책이 금서라서 그랬는지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불법복사본은 선배에서 후배에게 전해졌었고, 내 손을 거쳐 다른 누군가에게 갔다. 대학에 가게된 내 아이를 위해서 이 책을 샀다. 내가 기억하는 100페이지 남짓의 복사본과는 달리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양장책이라서 놀랐다. 내가 읽고 기억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가 선택해서 추려낸 것이었다.


표지에서 단색으로 처리된 헨리 조지의 사진은 어딘지 멀리를 바라보고 있다. 많은 출판사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출판됐는데, 이 책처럼 미래를 조망하는 모습의 사진이 많이 쓰였다. 혜안을 가진 위대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이미지다.


헨리조지의 사진이나, 군중 아니면 택스트를 사용한 표지들보다는, 영국의 아질로스 Aziloth 출판사에서 만든 표지가 책의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표지의 주인공은 마차를 타고 가는 신사들을 쫓아가며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이다. 마차를 타고 달리는 사람을 뛰어서는 못 쫓아간다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구걸을 하는 사람은 흙탕물에 먼지 묻은 구두와 옷을 입은, 분명히 가난에 고통받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 역시 당시의 복식에 따른 옷에 머플러와 모자를 쓰고 있다. 당장 구걸로한 끼를 때워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극단적으로 절박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 사람의 가난은 도시의 가난이고 1세계의 가난인 것이다. 그의 가난은 농촌의 가난과 다르고, 목화 농장 노동자의 가난과 다르고, 피식민지에 사는 사람들의 가난과도 다르다.


헨리 조지가 결국은 철학적이고 일면 종교적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구성하는 부의 피라미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로 선명한 경계로 나눠지지 않는다. 그 피라미드는 수 많은 작은 피라미드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뭉쳐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물질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비물질적 준재인 것이다.



이전 11화 #11. 생명이란 무엇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