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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보라니까 Dec 12. 2023

#15. 대랑학살수학무기

캐시 오닐 / 흐름출판


캐시 오닐은 자신이 가진 수학이라는 흔치 않은 재능으로 사회와 구조와 권력등에 의해 피해를 당하고 착취당하는 약자를 도우려고 하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이 책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가 말하는 대량학살수학무기(WMD)의 정체와 경계가 불분명하고 희미하다. 제도이기도 하고, 빅데이터, 프록시, 알고리즘, 모델, 소프트웨어, 의사결정체계이기도 하다. 필요에 따라 귀걸이도 코걸이다. 수학자에 퀀트라는 사람이 왜 이렇지 싶다.


엄청나게 큰 일인 양 떠들어댄 휴일선물환 롤오버 사건은 파생상품전문가의 눈엔 멍청한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수학도 금융공학도 아니다. 포워드 포지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작자들이 높은 연봉을 받으며 고객이 맡긴 돈을 굴린다는 사실과, 그들에 대한 내부통제가 이렇게 허술하다는 게 어이없을 뿐이다. 그 외에도 사례가 꽤 많이 나오지만 특정 부분만 부풀려서 꿰어 맞추는 것 같고 어설프다.


그는 무엇인가를 비판하고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상주의자일수도 있다. 그가 제안하는 대안은 거대한 실험이고 도덕적 상상력에 바탕한 착한 모델을 위한 새로운 여정을 꾸리자는 것이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고 인류사적 실험이다. 그러나 아련하게 멀다. 그에게 노래를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천국 따위는 없다고 쉽게 말할 수 있고, 국경없는 세상도 별 문제없지만, 사적소유가 없는 세상은 상상이라도 할 수 있냐고 묻는 오래되고 유명한 노래를.


하지만 캐시 오닐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촉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신념을 만들고 전파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논리가 빈약하거나, 일부 주장이나 사실에 있는 왜이나 억지가 그리 문제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파도를 타는 것이고, 타도를 탄 신념은 느리거나 빠르거나 혹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인간을 움직이니까. 덕택에 인간은 자신을 규정했던 모형이나 기술 혹은 왕권, 폭력, 이데올로기 등등 그 모든 것들을 타고 넘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비록 그 와중에 누군가 죽고 누군가 살겠지만.


그래도 책 표지는 꽤 잘 만든 것 같다. 책의 내용이 두리뭉실한 만큼 표지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디지털신호로 만들어진 미사일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지의 중심에 그려서 이 작고 날씬한 폭탄 하나가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가진다는 것을 잘 나타냈다. 표지에 쓰인 키워드들도 효과적으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무엇보다도 영어 원작의 표지가 유치하기 그지없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한글본을 만든 편집자와 표지 디자이너가 참 큰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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