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 / 동아시아
양자역학 책은 양쪽에서 욕을 먹는다. 전공자는 뜬구름 잡는 소리한다고 하고, 비전공자들에겐 너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은 특이하다. 양자역학을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금새 본색을 드러내고 어느새 물리학 주요 키워드를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휙휙 훝고 지나간다. 너무 대충아닌가와 너무 어려운데를 번갈아 하다보면 어느새 챕터가 마무리된다.
챕터 구성과 제목짓기가 단연 돋보인다. "원자: 보편에 관하여"라든가 "존재: 나타남에 관하여", "빛: 불변에 관하여"와 같은 제목을 보면 과연 이 책이 물리학 책일까 싶다. 저자의 지식과 소양이 물리학에만 머물지 않고 한참을 넘어선듯 하다. 하긴 그럴만하다. 형이상학으로의 철학과 형이하학인 물리의 경계선은 그야말로 중첩되어있으니까. 그래서 과학자는 물질을 연구하지만 결국 존재는 관계속에서 정의되는 확률적인 것임을 알게될 것이고, 바로 순간 물리학자는 철학자와 중첩된 존재가 될것 같다.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지만 어떻게 질문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표지에서 단호함이 느껴진다. 말랑말랑한 영화이야기, 철학이야기가 있다고해도, 결국 저자는 물리와 양자역학을 다루고 있음을 단단한 글씨체와 디자인에서 분명히 보여준다. 스펙트럼을 표지로 삼은 이유가 바로 그게 아닐까 싶다. 외견상 아무리 비슷해보이고 우리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더라도, 분광 스펙트럼을 통하면 그 물질이 어떤 조성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것은 같고 다른 것은 다르듯 세상 어느 것도 물리학의 차가운 방정식을 넘어설 수 없다는 메시지를 표지 디자인에 담은거다. 역시 물리학자들의 세상은 딴딴하다. 정말 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