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를 사랑한다> 3화
인간의 가치는 특별한 행위를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한다. 열심히 시험공부를 해야, 쉼 없이 꿈을 향해 내달려야, 하다못해 방 청소라도 해야만 가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행위를 해야만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은 조건적인 사랑에 너무 익숙한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떤 행위를 해야만 칭찬을 받는 조건적인 사랑에 길들여져 왔고, 행위를 해야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는 무가치한 자신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무가치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공백을 메워야만 하는 사회에서 내 느낌, 내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힘에 부친다거나, 쉬고 싶다거나, 슬프다는 감정이 올라와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눌러둔다. 내 느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은 ‘진짜 나’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뜻이다.
내 삶에 끼어들지 못하고 억압된 ‘진짜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내가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느라 행위의 의미도 모르고 행위하는 동안, 진짜 나는 어디로 갔는가? 억눌린 감정에 귀를 기울이면, 감정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내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투쟁하는 건 지긋지긋해!”
이 느낌은 진짜 나다. 이 말은 조건적인 사랑엔 질렸다는 뜻이며, 이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지치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사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표현이다. 분노하는 사람, 알콜 중독인 사람, 짜증 내는 사람, 혐오하는 사람, 무기력한 사람, 누구나 내면은 똑같은 말을 외치고 있다. ‘제발 나를 그냥 좀 사랑해주세요.’ 라고.
우리의 목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옷으로 덮어 상처를 가려왔던 과거를 뒤로하고, 상처를 직접 마주하며 연고를 바르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처는 곧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진짜 느낌(이대로의 나는 자격 없다는 느낌, 패배자라는 느낌, 부족하다는 느낌 등)이고, 화려한 옷은 학벌, 외모 등의 조건을 의미한다. 자신의 가치를 외부 조건이나 행위에서 찾는 것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가치를 찾지 못하면, 끝내 고리를 끊을 수 없는 고통이 반복된다.
감정을 억압하는 사회, 감정이 억압된 개인, 그것이 어쩌면 모든 문제의 유일한 원인인지도 모른다. 우리 안의 억눌린 감정을 해방시킬 때, 막혀 있던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잘되고 있는 와중에 느끼는 무의미함이며, 우울감이며, 무기력함까지도. 결국 우리는 나를 포장하고 있던 모든 조건을 떼어냈을 때도 자신이 가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경지를 위해 먼저 통과해야 할 질문들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내가 가장 무능하고, 내가 가장 아름답지 않고, 내가 가장 초라할 때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내가 잘할 때만, 멋질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못할 때도, 못났을 때도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