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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n 09. 2018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가?”

<그럼에도, 나를 사랑한다> 2화

 

 인간은 대체로 자신을 외적인 조건과 동일시한다. 즉 나의 외모, 몸매, 학벌, 재력, 집안 등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런 조건들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자신의 외모나 학벌이나 직업 중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자신을 사랑한다고 대답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기 쉽다.   


  그런 자기사랑은 ‘진짜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내 외적 조건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은 아무리 외적 조건(직업, 연인, 옷 등)을 갈아치워도 내면의 무의미한 느낌이 해소되지 않는 증상과 관련이 있다. 이런 경우는 아주 흔하다. 자격지심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더 높은 지위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나를 더 많이 사랑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연인을 갈아치우고, 부족한 자존감을 덮기 위해 과도하게 치장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마음 한구석의 구멍이 메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외적 변화가 내면의 느낌까지 영원히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은 인간의 흔한 착각 중 하나다. 외적 조건의 변화로 고양된 기분은 영구히 유지되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호르몬값은 항상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호르몬의 타고난 기본값이 ‘불안’인 사람은 외부 조건이 변한다 해도 잠깐 기분이 고양될 뿐 금세 불안한 상태로 돌아온다. 기본값이 ‘우울’인 사람은 다시 우울로 돌아오고 만다. 평소 우울감이 높은 사람은 복권에 당첨되어도 결국엔 우울한 정서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외적 조건을 바꾸면 내면의 행복이 커지리라 기대하면서 더 근사한 외적 조건을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지만, 막상 원했던 그곳에 가보면 뭔가 빠진 게 있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다. 이 마음의 구멍은 왜,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결핍감을 느끼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좋은 학벌만 갖는다면 이 공허한 마음이 해소될 거라고 믿고, 누군가는 눈이 조금만 예뻐지면 모든 게 완벽해질 거라고 믿고, 누군가는 나를 잘 알아주는 연인만 만나면 모두 다 채워진 느낌을 받을 거라고 믿는다. 즉 학벌, 눈, 연인 등의 외부 조건이 변해야 자기 내면의 결핍감을 해결해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 진짜 원하는 건 ‘외부의 그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채워줄 수 있는 감정이다. ‘지금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느낌 말이다. 외적 변화가 그 완벽하다는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자신에 대한 내면의 느낌은 사실상 외적 조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예쁜 눈을 갖게 된다고 해도 완벽함을 갈구하는 내면의 느낌과 습관은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더 좋은 조건들을 획득하는 것은 내면의 상처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끊임없이 옷만 바꿔 입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근사해진 것 같지만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대체로 나 자신에 대한 진짜 느낌은 외적 조건으로 한 꺼풀 가려져 있다.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고 물으면, 대체로 자신의 외적 조건에 대한 느낌을 말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모든 외적 조건을 벗겨낸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는가? 직업, 학벌, 외모, 친화력 있는 성격, 미적 감각 등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든 조건을 제외하고서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애의 근원을 가꾸고 지킨다고 하더라도 조건적인 자기애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조건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건에 기반을 둔 자기애는 자기사랑이라기보다는 내가 지키고자 하는, 지켜야만 살아남는다고 믿는 자기상이다. 이런 모습을 유지하는 내가 좋고 이런 모습을 유지해야만 사랑해줄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이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조건들을 다 떼어내 버린다면 내게는 무엇이 남는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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