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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답습, 그 치명적인 오류에 대해

경멸하던 모습이 결국 나이었음을....

by 델리러브

인터넷 방송국의 도산으로 나는 다른 케이블 방송사에 취직했다. 게임이라는 다른 분야로의 진출이었다. 게임에 '게'자도 모르던 내가 단지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단지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 난생처럼 접하는 게임은 나에겐 너무도 큰 산이었다.


결국 막내를 거쳐 서브 작가로 직위가 상승하면서 단지 게임을 하기 위해 새벽까지 사무실에서 게임을 했다. 그나마 게임이라는 언어는 어렵기도 하지만, 적당한 지식이 쌓이면 어느 정도 융통이 가능했다. 다양한 온라인 게임을 접하면서, 나는 그럭저럭 적응하며 지냈다.


서브 작가라고는 하지만, 아무도 나의 글을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피디와 함께 게임에 대한 정보과 영상 촬영에 대해 논하기는 했지만, 대본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선배가 없었다. 그렇게 나 잘났다 하던 시기에 복병이 나타났다.


고가의 브랜드를 장착한 엘레강스한 메인 언니가 등장했다. 나는 방목 상태에서 갑자기 등장한 양치기 개에 사면초가가 된 상태라고 할까. (개로 표현한 점이 좀 애매하긴 한데...) 망뚱어처럼 날뛰다가 갑자기 울타리에 갇혀 관리가 되니 심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언니는 사사건건 나의 행동을 주시했고, 나의 대본을 철저하게 까댔다. 토시 하나하나까지 체크하면서 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제는 하필이면 따닥따닥 사람들이 붙어서 일하는 사무실에서 주변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나를 앉혀놓고 훈계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부분에 대해 지적하자 나는 발끈했다. 그 부분은 게임 정보라서 수정에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메인 언니도 나긋나긋하고 엘레강스했던 말투를 걷어차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바꾸었다.


"내가 지적하는 게 불편하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사실 정확한 딕테이션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벌써 20년 여 년 전 일이라서) 이런 식으로 일을 배우면 어디든 일을 못할 것이며, 특히 공중파 일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 잘 되라고 한 말은 특히 듣기 거북했다. 하지만 언니의 과도한 걱정과는 달리 나는 얼마 못가 공중파로 진입했다. 물론 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사투 끝에 버텼다.


무엇보다 당시 그 상황이 불편한 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함을 줬다는 것. 그때의 상처는 물론 시간이 흘러 깊게 남아있는 건 않지만, 불쾌한 건 사실이다. 사무실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는 그 상황, 자꾸만 쪼그라들던 그때의 나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로부터 10년 정도 지났을까? 나도 메인 작가가 되었다. 당시 나는 한번 꽂히면 후배들의 대본을 엄청나게 수정하는 메인이었다. 변명하자면, 시사 코너의 경우, 추후에 고발까지 당할 수 있어 예민한 상황이기에 나도 민감하게 접근했다고 치자. 문제는 메신저로 대본을 보내면. 검토 후 수정이 많은 작가는 내 옆 자리에 앉혀서 보이는 자리에서 수정을 했다. 나는 계속 후배에게 닦달했다.


"이렇게 써도 맞아?"

"이렇게 수정해도 문제없어?"

"이건 왜 이렇게 쓴 거야?"


당시 나는 나의 임무에 도취돼 대본을 수정했고, 후배의 표정을 간과했다. 얼굴까지 빨개진 채 굳은 말투로 내게 대답하는, 나를 거쳐간 후배들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때를 기억하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얼굴. 나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뭉개고, 미친개처럼 짖어대던 꼰대. 그렇게 기억할까?


지나고 나니 알게 됐다. 어느 정도 경력이 수반되면 대본 수정은 일도 아니라는 것을. 대본을 쓰기 위해 판을 벌리고, 글로 정리하기까지가 오래 걸린다는 것을. 하지만 코너 작가들은 매주 방송을 찍어내다 보니 정리의 시간은 부족했고, 방송이 코앞인 상황에서 부족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을. 솔직히 좀 더 다독여주지 못했다. 나는 '나의 능력은 이 정도'야라고 과시하기 위해 대본 수정에 박차를 가했건 아닐까. (이제와) 나의 능력치에 대해 과시하고 싶은 계산이 숨어있었음을 실토한다.


결국 나는 과거에 만난 메인 언니의 꼰대 행위를 답습한 것에 불과했다. 자기반성 없이 진일보하지 못한 채 일에만 매진하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많다. 특히 프리랜서의 세계라 불리는 이곳에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누군가를 제물로 받쳐야 한다는 것을. 나는 후배들을 깔아뭉개고, 나는 능력자라며 메인 피디나 회사 대표, 본사 부장들에게 나를 과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요즘 사회초년생들은 꼰대를 만나면 좀비 행세를 한다고 한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무시한다고 한다. 지나가는 미친개가 짖는구나라고 연습까지 한다고 한다. 결국 꼰대 선배가 일을 시키려고 하면 못 알아듣는 척을 하고,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 쾌재를 부른다고 한다. 그 이유가, 만약에 못했을 경우,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슴에 응어리가 쌓일 정도로 인격까지 무시하는 걸 당해보니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그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정리한 것이다. 물론 하나의 단면이긴 하지만, 라떼형의 꼰대들에게 당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나는 선배고, 너는 후배야, 나는 고수고, 너는 하수야. 이런 논리?


꼰대를 답습하면서 꼰대가 된 중년들은 자신이 아직 꼰대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본인이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리고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애걸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하지 않다.


예전에 친구 집들이에 갔을 때, 친구 남편이 했던 말.


"그래도 내가 여기서 가장 나이도 많고, 애도 오래 키워봤으니까 인정해줘야지"


뭘 인정해야 할까? 본인이 꼰대임을 모르는 한 슬픈 꼰대의 슬픈 고백은 그날은 술자리에서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꼰대가 답습되는 이유는 그 꼬리를 끊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직된 조직 문화, 서열 중심의 문화가 아직도 직장 내 지배층에선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꼬리를 끊어야 하는 건, 지금 나처럼 꼰대를 답습했던 한때 윗선이었던 선배라는 걸 자각해야 할 시점이다.


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가슴이 닫혔기 때문이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말문을 닫는다. 한번 닫힌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닫히기 전에 손을 뻗어야 한다. 소통의 방법은 좀 다를 수 있다. 소통을 위한 접근이 좀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다그치고 소리치고 욕설에 가까운 분노를 후배들에게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치 동화 속 주인공, 검피 아저씨의 부드러운 리더십처럼 말이다. 배 위에서 장난치지 말라고 경고해도 결국 배가 뒤집힐 정도로 장난치고 싸우던 동물들에게 자신의 집에 가서 차 마시다 가라던 검피 아저씨처럼. 그런 소통, 그런 리더십이 필요한 것 같다. 물론 나는 더 이상 꼰대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꼰대가 될 소지가 높은 자리에서도 더 이상 나를 찾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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