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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연 Oct 30. 2020

자전거로 걷는 길  

자전거 위에서 만난 제3의 공간


[아이와 가기 좋은 제3의 공간]에서는 김남매 엄마이자 리틀홈 CCO, 이나연 님이 직접 가보고 고른 다양한 공간을 소개합니다. 또한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 방법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놀 수 있는 환경과 방법을 소개합니다.


 


애초에 나와는 상관없다 선 긋고 제쳐 놓은 일이 몇 있다. 자전거를 탄다는 건 그중 하나였다. 어느 CF 대사처럼 예쁜 자전거를 타고 누군가의 가슴속으로 달려가 보고 싶다는 맹랑한 로맨스를 상상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자전거보다는 앞에 달린 바구니에 꽂힌 바게트라든가, 꽃이라든가, 딸랑딸랑 종소리라든가, 청순하게 흩날리는 긴 머리가 자아내는 풋풋함을 동경했던 거였다.


자전거를 배우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다. 열두세 살 즈음,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받은 터였다.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있어 자전거를 타려면 제법 먼 곳까지 공터를 찾아 나서야 했는데, 해 질 무렵에야 어렵게 시간을 낸 아빠의 속성 훈련 덕에 비틀비틀 두어 바퀴를 돌았지만 (아빠가 잡아주어 겨우) 해가 다 넘어가도록 혼자 균형을 잡는 것엔 끝끝내 실패했다. 컴컴한 밤거리를 터덜터덜 돌아온 그날 이후로 마당 한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삭아가는 자전거를 볼 때마다 불쑥 올라오는 불편한 감정을 애써 모른척했다. 그깟 자전거 없어도 내 삶은 충분하다 되뇌고 되뇌었다.


가느다란 두 바퀴 위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란.... 장 자크 쌍빼, 열린책들,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중



자전거가 필요해


그랬던 내가 자전거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초유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집에 갇힌 지 5개월 만의 일이었다. 코로나 사태는 끝을 모르고 장기화될 조짐이 보였고, 나의 인내심과 체력은 곧 바닥을 드러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초조하게 만든 것은 아이들이 이 이상한 상황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산으로 들로 나가 뛰어놀던 아이들이 방 안에서 보내는 날들을 어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텔레비전과 모니터, 스마트폰 사이로만 건너 다니는 일상이 당연해졌다. 집 안에서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온 가족이 한 공간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소리와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제각각 흩어지게 만들었다.


아이들과의 물리적 거리가 좁아질수록 심리적 거리는 멀어졌다.
가족의 공간에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자전거를 못 타다 보니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일에 의욕이 없었다. 전국 어디든 기꺼이 달려가면서도 집 앞에서 자전거 페달 굴릴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젠 정말 뭐라도 해야 했다.

 

내 입에서 '애들이랑 자전거를 타볼까'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가족 수대로 자전거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의 오랜 로망이 '온 가족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나! (야외에서 거리를 두며 비교적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인기가 급 상승하여 자전거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던 때였다. 덕분에 대한민국 중고거래 시스템의 다양, 신속, 정확함을 원 없이 누려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네 식구는 각자의 자전거를 갖게 되었고, 급기야 차에 자전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캐리어까지 장착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가 바꾼 여행 풍경. 어느새 모양새는 지나치게 본격적인 자전거 가족이 되었다.

 

이제 자전거만 타면 된다.


남들 다 배울 때도 배우지 못한 자전거를 나이 먹어 시작하자니 일찌감치 퇴화된 운동신경부터 길어 올려야 했다. 작은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곤 발을 못 떼 뒤뚱거리는 스스로가 어찌나 당혹스럽던지.(이 정도일 줄이야..) 아이들도 아이들대로 고전 중이었다. 여름 땡볕은 무자비했고 겁 없이 달려들고 보는 아들과 달리 딸아이는 무섭다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순간 이렇게 삐걱대는 몸뚱이를 가진 엄마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 나는 엄마니까! 에라 모르겠다 페달을 콱콱 밟아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아빠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던 그 날, 자전거와 몸이 함께 곧게 세워지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드디어 내 삶에 자전거가 들어왔다.    



자전거가 데려가 준 제3의 공간


언제 주춤했었냐는 듯 아이들은 금방 자전거에 익숙해졌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큰 꿈을 내비친 남편은 우리가 넘어지는 꼴을 면하자마자 거침없이 자전거길로 이끌어냈다. 팔당역에서 두물머리에 이르는 약 10km 구간. 걸어서 간다면 쉽지 않은 거리지만 자전거로는 한 시간, 해볼 만하다고 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어마어마한 오르막. 장거리를 간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던 딸은 못 가겠다며 징징대기 시작한다. 남편 빼곤 모두 초보인 상황에 누가 누굴 도울 처지도 못되지만 '우리 가족 사전에 낙오는 없다' '자전거를 끌고서라도 모두 함께 간다' 어르고 달래고 밀고 당기며 조금씩 나아갔다. 빨리 가겠다는 사람들에게 쉴 새 없이 길을 내어주며 길 오른편으로 바짝 붙어 아들 - 남편 - 딸 - 나 대열을 맞춰 천천히 길을 밟아갔다. 땀이 흘러도 닦을 손이 없고, 가는 내내 펼쳐지는 기가 막힌 풍경으로 눈 돌릴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좋았다.
아이들의 뒤통수가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따라 기울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신난 등짝이 저 멀리 달려가는 것을 보는 것이,
고래고래 소리쳐 불러야 하는 거리가,
같은 방향을 보며 달리다 함께 쉬고 함께 일어서는 순간이,
이만큼 달려와서야 비로소 우리가 다시 한 공간에 섰다는 느낌이,
그 충만함이 너무 좋았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섬진강 자전거길도 달려보았다.


길이 곧 여행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지만, 차에 자전거 캐리어를 장착한 덕에 우리의 자전거 생활은 겁 없이 넓어졌다. 자전거를 올리고 내리는 수고가 더해졌지만 자전거만 있으면 길 그 자체가 여행이 되니 코로나 상황에도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도보 생활자가 운전자가 되면 늘 오가던 길에서도 차도와 신호체계, 표지판 등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듯 자전거를 타고난 이후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이렇게나 자전거 길이 뻗어 있고, (중간중간 차도를 타야 한다고는 하지만 자전거로 국토 종단과 횡단이 모두 가능한 정도) 그 길 위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발견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익숙한 길은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지만, 이제껏 몰랐던 길, 아직 가지 않은 길이 이렇게나 멀리 길게 뻗어 있다는 것은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한번 세게 넘어질 각오로 페달을 밟았던 순간, 귀찮고 버거웠지만 아이들의 자전거를 잡아주며 할 수 있다 격려하던 순간, 그 순간 덕에 우리 가족은 새로운 시간과 공간, 경험을 얻었다.  

 

아직도 내 자전거 실력은 찬바람에 흐르는 콧물 겨우 닦아내는 것도 조마조마한 정도지만 보란 듯이 꿈꿔본다. 아이들과 함께 길고도 먼 낯선 길을 찾아가는 꿈을. 한 방향으로 나란히 속도를 맞춰 달리는 꿈을. 저만치 멀어진 서로를 고래고래 외쳐 부르는 꿈을.


우리 넷, 자전거 넷




코로나에도 우리 아이들은 잘 놀아야 하기에 '자전거 좀 타는 가족'들이 정보와 마음을 모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을 소개합니다.  


지안, 정우네 - 올림픽공원 (1-2시간 소요)

초보 실력에 멋 모르고 한강고수부지 자전거길을 찾았다가 쏜살같이 달려드는 자전거 부대에 기겁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특히 주말에는 속도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아이들과 주춤거리다가 무안을 당하거나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좁은 자전거길보다 너른 공터가 마음이 편하다. 올림픽공원은 평화의 문이 서있는 넓은 광장을 비롯하여 수영장 앞 , 핸드볼 경기장 앞 등 마음껏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광장이 여럿 있고 자전거 도로도 따로 나있어 우리 가족이 가장 자주 찾는 곳이다. 대부분 평지지만 적당한 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지루하지 않고 잔디마당이나 숲길, 야생화 정원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벤치와 편의점, 카페,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어 자전거 새내기 가족에게 안성맞춤이다.  


올림픽공원은 도심에 위치해 있지만 워낙 넓고 여러가지 풍경을 품고 있어 라이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호네 (instagram @vitamin_bbo)
- 아라뱃길 자전거길 (21km, 2시간 소요)

아라서해갑문~아라한강갑문에 이르는 아라뱃길 자전거길은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기에 더없이 좋은 구간이다. 바다 시작점에서 시작해 유람선이 다니는 운하를 배경으로 한강까지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거의 없이 평평하고 곧게 뻗어 있다. 운하 양방향으로 모두 자전거길이 나 있어서 어느 쪽을 달리든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이 곳의 또 하나의 매력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만나는 아라폭포. 폭포 옆을 지날 때면 미스트처럼 폭포물이 튀기는데 그 시원함과 재미에 아이는 몇 번이고 같은 길을 오간다.

 

자전거 국토종주 수첩을 미리 준비한다면 아라뱃길의 시작점과 도착점에서 인증 도장도 찍을 수 있다. 아라서해갑문은 부산까지 이어지는 633km 4대 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시작점인지라 더욱 의미 있다.

 



하준이네 (instagram @hajun_lovlov)
- 양재천 자전거길(19km, 1시간 20분 소요)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서 경기도 과천시까지 이르는 양재천 자전거길은 양재천을 따라 크고 작은 빌딩들이 어우러져 도심 속 여유로운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우면동에서 일원동까지의 코스는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한쪽 방향으로만 이동하는 일방통행 자전거길로 되어 있어 아이가 마주오는 자전거와 부딪힐 걱정을 덜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책로가 자전거길과 붙어 있어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어린 동생이 있는 집의 경우 킥보드나 인라인, 유모차 등으로 이동하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도 좋다. 또한 길을 따라 크고 작은 아파트 단지가 많기 때문에 자전거길 중간에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쉽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도록 반환점도 곳곳에 잘 배치되어 있으며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진 산책로와 벤치가 휴식을 좀 더 용이하게 해 준다.


이 곳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양재천을 자유롭게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자전거로 지친 다리를 잠시 쉬며 징검다리를 놀이 삼아 건너는 재미는 짧은 자전거 여행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한 번 재미를 붙이면 징검다리가 보이는 구간마다 아이가 자전거를 멈추고 건너보자 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상황과 체력이 된다면 내곡동과 연결된 여의천 자전거길이나 한강부터 용인까지 이어지는 탄천 자전거길까지 연결하여 자유롭게 코스를 변경해도 좋다. 날씨가 좋을 때 자전거길에 붙어 있는 서초 문화예술공원이나 양재 시민의 숲에 들러 소풍을 즐기고 양재천 카페거리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면 가족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만능 자전거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영, 소정이네 (instagram @hwang.eun.hye)
- 경주 선덕여왕릉에서 황룡사지까지 (약 10km, 문화재 관람시간 포함 약 4시간 소요)

고즈넉한 한옥과 봉긋 솟아오른 릉이 돋보이는 언덕 없는 평지 도시 경주는 자전거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경주를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월성지역을 벗어나 보문동 낭산의 선덕여왕릉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월정교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여 10여분을 달려 릉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낭산(104m)에 오르면 숲길의 끝에 자리 잡은 선덕여왕릉을 맞이할 수 있다. 다시 한적한 가을 들녘 농로를 따라 페달을 밟다 보면 들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진평왕(선덕여왕의 아버지) 릉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곳 잔디밭과 고목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며 위용을 잃지 않으면서 소담하고 온화한, 유홍준 교수가 극찬한 이 릉의 진가를 찾아내기를 바란다. 다음 여정은 선덕여왕과 관련된 일화를 가지고 있는 신라의 국찰인 분황사와 황룡사지까지 이어지는데, 이 두 곳은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자전거 이동 시 가장 부담이 적은 구간이기도 하다. 황룡사에서 나와 이후 경주 국립박물관이나 동궁과 월지, 또는 첨성대를 방문하는 코스를 짜도 좋다. 모두 10-15분 거리 내외에 있어 원하는 대로 방문하여도 일정과 거리에 부담이 없다.

 

월정교에서 출발하여 선덕여왕릉에서 황룡사지, 다시 월정교까지 약 10km 구간은 경주의 복잡한 중심지를 벗어나, 가을 들녘의 정취와 함께 선덕여왕의 향기에 흠뻑 빠질 수 있는 훌륭한 자전거 코스다.

 

단, 자전거 전용 도로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초보자에게는 부담되는 코스일 수 있다. 경주 시내 중심지와 보문호 관광단지 주변에는 자전거 대여소들도 있으니 짧은 구간부터 자전거로 이동하는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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