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사랑하는 10대 청소년을 위한 작업실,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
[아이와 가기 좋은 제3의 공간]에서는 김남매 엄마이자 리틀홈 CCO, 이나연 님이 직접 가보고 고른 다양한 공간을 소개합니다. 또한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 방법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놀 수 있는 환경과 방법을 소개합니다.
이제 방에 들어가려면 꼭 노크를 해야 하고 (그럼에도 거절당할 수 있다) 깜빡 문을 열어 젖히기라도 하면 퍼붓는 짜증을 받아내야 한다.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싫다고 매일 유치원 문 앞에서 울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커서 자기 공간, 자기 시간, 자기 취향을 외치고 있다니! 불시에 찾아온 변화 앞에서 나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엄마 눈엔 마냥 어리지만 스스로는 제법 컸다고 생각하는 나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그래서 뭐든 혼자 해보고 싶고, 그러나 엄마는 내 생활을 잘 몰랐으면 좋겠고, 하지만 누군가는 알아봐 줬으면 좋겠는 참으로 복잡 미묘한 나이.
아이도 어른도 아닌 애매한 중간계. 내 아이가 청소년이 되었다.
나름대로 나는 아이의 청소년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삶은 자기 자신의 것’이라 믿기에 우리 아이들이 실컷 헤매고 마음껏 싸우며 각자의 길을 찾아가길 바랬다. 사춘기의 방황과 반항쯤은 얼마든지 쿨하게 받아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막상 눈 앞에서 방문이 쾅 닫히던 순간, 나의 진심 어린 조언을 잔소리라며 튕겨내는 순간, 활짝 웃던 눈으로 나를 흘깃 째려보는 순간 마음의 방어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니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로 시작해 ‘그럼 너 혼자 살든지!’로 마무리되는 전투의 나날로 망연자실해진 마음 밭을 헤집어 보던 어느 날, 다행스럽게도 잊었던 다짐이 하나 둘 떠올랐다.
내가 기다리고 준비했던 그 시기를 내 아이가 지나고 있구나. 지금이 바로 더없이 쿨해져야 할 때구나.
우리에게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구나.
요즘엔 종종 아이를 캐묻는 대신 나의 청소년기를 뒤적여본다. 가족보다 친구가 좋고, 달고 시고 쓰고 매운 감정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때. 센치한 기분을 스카프처럼 두르고 오글거리는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 내려가던 때였던 그 시절.
지나고 보니 그 시절에 차곡차곡 채워 놓은 감성들 - 그때 만난 책, 영화, 음악이 나의 삶을 만들었다. 아마 내 딸의 서랍 속에도 엄마는 몰랐으면 좋겠는 감정과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으리라.
리틀홈을 운영하며 수많은 어린이 공간을 찾아다녔다. 부모로선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와 공간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 많은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같은 공공기관에는 대부분 어린이를 위한 공간과 체험이 마련되어 있고 여러 개인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감성과 지성을 자라게 하는 즐거운 시도들이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동안 나연 님과 SEE SAW가 함께 발굴해온 '어린이를 위한 제3의 공간'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소년에게 할당된 사회적 관심과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단적인 예로 우리 동네 도서관엔 어린이실은 있어도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란 일반 자료실 한 귀퉁이의 서가 하나가 고작이다. 그마저 대부분은 ‘세계명작전집’이 차지하고 있으며 (a.k.a 청소년 필독도서) 대한민국 출판산업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왔음에도 근 삼십 년 전 나의 청소년기 독서 리스트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 역시 충격적이다. 미디어에선 연신 4차 산업혁명이다 창의성이다, 혁신이다 외쳐대지만 초등 고학년부터는 학업으로 직행하는 모노레일에 탑승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지는 대한민국 청소년의 현실은 여전하다.
나로선 풍성한 자양분을 누리며 뿌려진 씨앗이 한껏 키를 늘이고 꽃을 피워야 할 시기에 더 작은 화분으로 분갈이 되는 상황이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이 ‘엄마는 몰라도 돼’를 입에 달기 시작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겐 부모 품을 떠나 뿌리내릴 수 있는 양지바른 너른 땅이 꼭 필요한데 말이다.
‘청소년 전용’을 표방하는 공간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서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른다. 더욱이 나 어릴 적 엄마 손잡고 드나들던 대학로 파랑새 극장이 있던 그 아름다운 건물에 자리했다니 세대를 잇는 공감대도 기대되었다.
12-19세 청소년을 위한 작업 공간,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은 ‘또래들이 만나 자유롭게 취향을 공유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어 콘텐츠를 만들며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위해 만들어졌다.
‘자기만의 이야기’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봉준호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는 수상 소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 사회가 꽤나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정작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발견하고, 표현해볼 기회를 쥐어주는 일에 현실은 여전히 인색하고 무지하다. 어쩌다 용기 있는 청소년이 큰 마음먹고 속에 간직해 온 이야기를 꺼내도 ‘뭐라도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는’ 부모와 학교는 시원한 대나무 숲이 되어주지 못할 때가 많다.
스토리스튜디오는 감시와 평가의 시선을 거두고, 아이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도록 그저 공간을 내어주는 곳이다. 취미 많고, 그래서 장비 많고, 그러면서 성격까지 털털한 선배의 작업실에 놀러온 기분이랄까. 아마도 그 선배의 대사는,
너 원하는 대로 다 해. 나 신경 쓰지 말고! (feat. 멋짐)
스토리 스튜디오 혜화랩 (이하 스스)은 12-19세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자유 창작 작업실이다.
무료라기엔 과분하게도 스스에는 만들기, 그리기부터 영상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재료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창작의 영감이 필요하다면 아이들의 성장과 관심사, 사회적 이슈에 발 빠르게 반응하여 선별되는 서가에서 그림책, 그래픽 노블, 문학과 비문학을 넘나드는 각종 서적을 뽑아 읽으며 차근차근 채워가면 된다. 대세 중의 대세 넷플릭스, 왓챠, 웹툰 같은 유료 콘텐츠도 엄선된 리스트 속에서 (엄마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스스의 공간은 뚜렷한 구획 없이 연결되어 있어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뒹굴며 누릴 수 있는데 덕분에 서로 다른 취향과 관심사를 지닌 또래들이 서로의 작업을 힐끗 넘보며 자연스레 영향을 주고받는 융합과 통섭의 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창한 기대도 해보게 된다.
혼자 하는 작업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워크숍을 통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깊게, 멀리 가져갈 수 있게 돕는 어른들을 만날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에 맞게 온라인 오프라인을 오가며 더 많은 청소년을 만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니 스스의 소식에 귀 기울여 보시면 좋겠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급격한 성장통을 ‘십대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그저 견뎌 내라고 하기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참으로 녹록치 않다. 그렇다고 시시콜콜 간섭하며 끌고 가는 건 성장의 기회마저 박탈해 버리는 꼴.
어른이 된 우리가 청소년이 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너른 공터를 마련해 주는 것. 마땅한 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릴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찌는 듯한 더위와, 물난리가 오더라도 스스로 이겨내고 저마다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 아닐까. 그러기 위해 간절한 소망을 담아 외쳐본다.
1 동네 1 스스!!
글: 리틀홈 CCO 이나연 님
편집: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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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의 운영자가 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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