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8번의 꿈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주 Jun 29. 2020

당신도 누군가의 딸이었겠지

꿈을 꾸는 길, 두 번째 이야기


당신의 손은 매서운 바람을 닮아 있었다

그 손으로 내 얼굴을 자주 쓰다듬곤 했었다


태어나줘서 고맙다 내 딸아

내가 사는 이유다 내 딸아


내가 수화기를 붙잡는 날

매번 듣는 당신의 아린 음성


나는 도망간다

하염없이

당신을 그리워하지만

나는 멀리한다


당신의 사랑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찬드라반 마을에 가면 아이들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할머니' 나에게 그 단어는 너무나도 각별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다.


찬드라반 마을의 할머니 1


나에게는 친가 두 명, 외가 한 명. 총 세 명의 할머니가 있다. 그래서 찬드라반 마을에 있을 때 그들의 삶이 너무 동떨어진 삶이 아니라 너무 가까운 삶으로 느껴진다. 우리 할머니들은 6.25 전쟁을 겪고 겨우 인생의 큰 고비를 넘겼지만 그 후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수많은 박해를 받고 자라셨다.

 


찬드라반 마을의 할머니 2


먼저 첫 번째로, 친가의 큰 할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평생 농사일만하며 허리도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늘 굽어있는 상태로 평생을 사셨다. 어린 시절 나는  자로 굽어있는 허리를 볼 때 '원래 어른이 되면 저런 허리를 가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크고 나서 생각해보니 참 어리고 여물지 못한 생각이었다. 원래 그런 삶이 어디 있으랴. 모두 무언가에 영향을 받아서 많은 변화를 한다. 우리 큰 할머니는 그렇게 아픈 변화를 하셨다. 지금은 허리를 아예 사용하지 못해서 장애 판정을 받게 됐다.


찬드라반 마을의 할머니 3


친가의 두 번째 할머니, 작은 할머니는 굉장히 각별하다. 나를 7년 동안 키우셨고 하염없이 큰 내리사랑을 받아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어린 시절은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이 오직 할머니와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총 11명의 손주들 중에서 '너를 가장 사랑한다.'라는 눈빛을 늘 받아왔다. 그 덕에 검은색으로 묻혀버릴 때마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기억하며 다시 덧칠을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찬드라반 마을의 할머니 4


외가의 할머니는 언제나 밝은 얼굴로 "내 예쁜 강아지"라고 부르신다. 친가의 할머니들과 또 다른 삶을 살아온 할머니는 나의 기도의 기둥이다. 기도와 감사의 삶이 온몸에 배어있어 나의 평범한 일상들을 부끄럽게 한다.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이 주름 하나하나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그것보다 더 움푹 팬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한 믿음.



찬드라반 할머니의 손 


위의 사진을 보고 이번 브런치 배경 사진을 그려보면서 정말 내가 가장 사랑했던 건 '할머니의 거친 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할머니들 그리고 찬드라반의 할머니들의 두 손은 어찌나 지독한 시간을 겪었을지 차마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가끔 그 손들이 내 얼굴을 어루만질 때 '태양을 오랜 시간 만난 수세미'가 생각났다. 할머니들의 손이 하나하나 상기되는 지금 괜스레 유난히 고운 내 손을 한번 만져본다. 참으로 부끄럽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