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찬드라반 마을을 위한 놀이터를 꿈꾸다
2018년 9월, '스웨덴, 폴란드, 케냐, 인도, 한국에서 놀이터 워크숍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엇이었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아무렴 가장 선명했던 기억으로 남았던 건 인도 찬드라반 아이들과 놀이터 워크숍을 했을 때였다. 찬드라반 마을의 아이들은 마을 밖의 하루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의 작은 발걸음은 낯선 땅을 밟아본 적이 없고, 아이들의 두 눈은 새로운 세상을 본 적이 없다.
찬드라반 아이들에게 있어 놀이터란 무엇인가? 어쩌면 ‘놀이터’라는 단어조차 낯설지 모른다. 그들이 그려본 적 없는 그림, 들어본 적 없는 꿈, 다가가본 적 없는 소원처럼 말이다.
놀이터는 단순히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떠들썩한 장난이 오가는 공간이 아니다. 놀이터는 상상과 용기, 창조와 교감을 배우는 첫걸음이다. 그것은 울퉁불퉁한 돌길에서 발이 걸려도 쓰러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곳이자, 친구와 함께 달려가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색깔로 세상을 채워나가는 법을 배운다.
아무렴 놀이터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하고 나니 찬드라반 아이들에게 '놀이터'라는 단어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제공할지에 대해 리서치와 워크숍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를 찾아줄 결심으로 2019년 1월, 또다시 찬드라반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골목과 사람들 사이에서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의 눈빛을 마주했을 때, 제 마음속에도 알 수 없는 설렘과 기대가 피어났다. 그곳엔 따뜻한 햇살 아래 모여 앉아 있던, 그러나 ‘놀이터’가 무엇인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이들이 있었다.
워크숍의 첫 순간 아이들에게 "놀이터"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했다. 아이들이 제 말을 알아듣고 꿈꾸듯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나 또한 그들의 마음을 함께 상상하게 되었다. 이번 워크숍은 5월에 진행했던 지난 워크숍과는 다르게 특별히 색칠 도구와 종이를 준비해, 아이들이 직접 자신만의 놀이터를 그려볼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엔 쭈뼛거리며 망설였지만, 점차 아이들의 손끝에 변화가 찾아왔다. 하나둘 색이 더해지며 종이 위에 놀이터가 형체를 갖춰 나갔다. 어떤 아이는 높고 둥근 미끄럼틀을 그렸고, 또 어떤 아이는 커다란 그네를, 혹은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공간을 상상하며 그려나갔다. 이들은 그려진 놀이터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환하게 웃는 자신을 그려냈다.
그리고 아이들은 단순히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손을 맞잡고, 웃음을 주고받는 법을 배웠다. 몇몇은 손에 온통 흙을 묻히며 서로를 향해 미소 지었고, 또 다른 몇몇은 땅 위에서 뛰놀며 자유로움 속에 몸을 맡겼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바람을 타고 마을 구석구석에 퍼져 나갔다. 어쩌면 이 순간은 아이들이 그저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첫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작업물이 완성될 즈음, 이곳에서 마주한 꿈과 기대가 얼마나 순수하고 큰지 새삼 깨달았다. 이들은 단순히 노는 공간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그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안전하고 편안한 쉼터, 그리고 함께하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곳을 말이다.
워크숍이 끝난 후, 아이들의 바람이 담긴 작은 그림들을 바라보며 나는 단지 놀이터 이상의 공간을 약속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꿈을 꾸는 연습이자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내 가슴도 뜨거워졌다.
놀이터는 단지 놀고 즐기는 장소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온몸으로 대화하며 배웠다. 찬드라반의 이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웃음과 손길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앞으로도 그들이 꿈꾸는 길을 따뜻하게 비춰주길 바란다. 부디 오랜시간 동안 찬드라반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작은 놀이터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하는 건 심장한테 뛰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야. - 야누시 코르차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