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파티 한 조각도 놀이기구가 되지
2018년 1월, 북유럽의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스웨덴에서 ‘놀이터’라는 주제로 수업과 워크숍 및 놀이터 설계가 시작되었다. 단순히 디자인 수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었지만, 놀이터라는 단어를 다시 되돌아보며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 그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디자인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이 워크숍들은 내 삶을 바꿔주었다.
스웨덴에서의 첫 시도는 단순한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지만, 그 여정은 폴란드, 케냐, 인도, 그리고 한국까지 이어지며 점점 더 큰 의미와 깊이를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배움은 대학원 졸업논문과 2019년 8월의 졸업 전시회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워크숍에서 처음 고민한 질문은 “놀이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였다. 지난 어린 시절과 그간 워크숍을 했던 여정을 돌아보며 놀이터란 단순히 놀이기구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상상력을 펼치고, 자신을 표현하며,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언어가 되는 장소였다. ‘놀이터’는 단순히 공간을 넘어서, 아이들의 가능성과 권리를 보호하는 상징적 공간이라는 것. 어린 시절에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아보지 못한 결핍으로 인해 지금까지 다양한 나라의 아이들을 만나며 그들만의 놀이터를 궁금해했던 이 모든 과정은 단순히 프로젝트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로 엮여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각 나라의 놀이터는 단순히 공간 설계가 아니라, 아이들의 삶과 이야기가 담긴 연대의 상징이라고 느껴졌다.
워크숍을 진행했던 나라 중 가장 애정을 쏟았던 인도 찬드라반 마을을 중심으로 ‘놀이터’라는 주제를 탐구하며 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들과의 교류는 두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중 첫 번째 워크숍은 ‘놀이터’라는 개념에 대한 탐구로 시작되었다. “너희들의 놀이터는 무엇이니?”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클레이를 활용해 자신만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놀이터라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닫게 되었다. 놀이터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추상적이며 자유롭고 상상력이 넘쳤었다. 그 후, 아이들의 클레이 작업을 중심으로 개념을 확장해 놀이터 설계를 진행했다. 그 결과 놀이터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고,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작업의 이름을 "Touch the Ground, Play the Ground"라고 지었는데 놀이를 통해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서, 아이들이 땅과의 연대와 창조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려 했다. 땅에서 비롯된 재료를 만지고, 놀이의 과정을 통해 그 의미를 경험하며, 아이들은 자연과 자신의 나라인 인도의 문화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 이 작업은 단순히 놀이터를 설계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에게 일상적 소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고, 놀이 속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기회를 제공하려 했다.
각 놀이터의 기구, 공간마다 인도의 전통 놀이 혹은 음식을 합친 놀이터 기구들을 제작하였다. 그중 스스로가 가장 재밌다고 생각하는 놀이기구 중 하나는 "Let's make Jjapati"였는데, 짜파티(Jjapati) 한 조각을 먹다 영감을 받아 만들게 되었다. 짜파티는 인도에서 카레와 함께 먹는 흔한 빵이며 아이들이 이 놀이 기구를 통해 짜파티를 만드는 과정을 놀이로 체험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그리고 단순히 놀이 기구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짜파티를 만드는 행위를 통해 놀이와 문화를 연결하는 창의적 접근을 시도했다. 놀이의 첫 번째 단계로, 놀이의 첫 단계는 아이들이 물을 만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을 씻는 행위는 요리 전 자연과 접촉하는 중요한 과정이자, 놀이의 시작점이 된다. 두 번째로, 가루를 만지는 단계에서는 실제로 요리 재료를 준비하는 느낌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감각을 활용해 창의적인 놀이를 경험하게 된다. 세 번째로, 플라스틱 공으로 표현된 짜파티 반죽의 모양을 건너는 단계는 아이들이 물리적 움직임을 통해 도전 정신을 기르는 과정을 가진 이 과정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 반죽의 형태를 느끼며 짜파티를 형상화하는 상징적 요소를 담고 있다. 네 번째로, 집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경험은 마치 밀대로 반죽을 펴는 듯한 동작을 상징한다. 이 역동적인 과정은 놀이의 절정을 이루며,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짜파티 모양으로 만들어진 바닥에 도착하며 놀이를 마무리한다. 이는 놀이의 전체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주는 중요한 순간이다.
결국, 이 놀이기구는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놀이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연결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며, 아이들에게 땅 위에서 함께 꿈꾸고 배우는 기쁨을 선한다. "Touch the Ground, Play the Ground"라는 작업의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한 이 작품은, 놀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창의적 도구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다.
"왜 굳이 인도의 한 마을 이야기를 선택했어?”라고 전시회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그 아이들은 나에게 '꿈'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야.”라고 답했다. 2012년부터 방문했던 인도 찬드라반 마을의 아이들은 내가 가진 한계를 넘어 인생에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단순히 예술을 나를 위한 소재가 아니라,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전시회를 통해 내가 경험한 과정들, 느낀 것들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사와 기쁨을 주었다.
2019년의 작업과 전시회, 그리고 논문은 단순한 끝맺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쉼표, 그리고 더 큰 이야기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단순히 창작자가 아니라 더 많은 이들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다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시를 통해, 나는 찬드라반 아이들과의 연대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들의 작은 손길과 맑은 웃음,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나의 작업의 본질이자 나침반이었다.
또한, 전시회에서 보여준 놀이 기구들은 단순한 오브젝트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놀이의 언어를 통해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상상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다리였다. 짜파티를 만드는 놀이기구도, 땅과의 연결을 상징한 설치 작품도,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른인 우리도 그들과 함께 땅을 만지고, 땅 위에서 놀며,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번 작업을 통해 세상 곳곳에 있는 아이들의 꿈을 이어가고자 다짐했고 그들의 목소리가 끊기지 않도록, 그들의 이야기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꿈을 꾸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은 놀이터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는 방식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제, 그 길 위에서 멈추지 않고 걸어가려 한다. 찬드라반에서 시작된 꿈은 세계의 더 많은 아이들, 더 많은 놀이터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들과 함께 땅 위에서 노는 순간을 꿈꾼다.
"놀이터가 없는 곳에서, 꿈은 더욱이 빛난다."
놀이야말로 가장 높은 형태의 연구다. – Albert Einstein
- 참고문헌 : A study on playground for the untouchables : focusing on Chandrabhan village case, India -Sulju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