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만난 놀이터
2018년 1월부터 8월까지, 총 24번째 비행기를 타고 돌고 돌아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역시 나의 고향땅은 이곳이니 놀이터 워크숍을 꼭 해야지.’라고 말하며 한국에서 유치원을 대상으로 워크숍 할 곳을 열심히 찾았다. 마침 경기도의 한 유치원과 연결이 되어 7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놀이터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워크숍이 열린 날, 아이들은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클레이의 질감에 호기심을 보였다. 한국의 전통문화에서는 손으로 무언가를 빚어내는 작업이 일상적이다. 도자기 공예나 한지를 만드는 작업처럼, 한국의 예술은 손끝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워크숍 재료로 사용했던 클레이는 손에 쥐면 부드럽고, 힘을 가하면 모양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 아이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펼칠 수 있는 재료였다.
아이들은 각자의 놀이터를 상상하며 클레이로 자신만의 놀이터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높다란 미끄럼틀을 만들고, 또 다른 아이는 그네를,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동물들까지 만들었다. 다양한 형태와 구조물들이 아이들 손에서 자유롭게 태어났다. 한 아이가 흙을 사용한 작은 언덕을 만들자, 다른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고 함께 언덕을 크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 순간은 한국의 공동체 문화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장면이었다. 한국에서는 협동과 함께하는 문화가 중시되는데, 이 아이들 역시 무언가를 함께 이루어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놀이터의 설계 과정은 아이들이 독창성을 발휘하면서도, 서로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한국에서 놀이터는 단순한 놀이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놀이터는 지역 사회의 한 부분이자,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의 규칙을 배우는 장소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집단 속에서의 조화와 타인을 배려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규칙을 만들어가며 질서를 유지하고, 때로는 다툼을 겪으면서 타협과 양보를 배운다. 워크숍에서도 이러한 한국적 공동체 의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어떤 아이가 "우리 같이 만들자"라고 하면서 함께 큰 구조물을 만들었을 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협동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공동체 가치가 어린 세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클레이로 놀이터를 재현하는 작업은 단순한 조형 활동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상상하고, 그 공간이 어떻게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아이는 자신의 놀이터에 작은 나무와 벤치를 넣어 '쉼터'를 만들었다. 그 아이는 "여기에서 친구들이 쉴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놀이터라는 공간은 놀이와 동시에 휴식과 사색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는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이다. 이는 한국의 유교적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문화에서 자연과의 조화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클레이로 놀이터를 만들며 자연을 표현한 아이들의 작품은 이 가치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워크숍이 끝난 후,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클레이 놀이터를 자랑스러워하며 설명했다. 어떤 아이는 높다란 미끄럼틀이 "자신이 더 멀리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라며 설렘을 표했고, 또 다른 아이는 여러 가지 색을 혼합해 만든 모래놀이 공간을 자랑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한국에서 놀이를 통해 배우는 교육 방식은 매우 중요시된다. 놀이는 단지 신체적 활동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결국, 이 놀이터 워크숍은 단순한 예술 활동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아이들은 클레이라는 재료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한국적 가치와 공동체 의식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한국의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이 결합된 이 워크숍은, 아이들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배움의 장이 되었다. 놀이터는 아이들에게는 삶을 배우는 중요한 장소이며, 그 속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을 탐구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적 요소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깊이 스며들어, 이들의 가치관과 시각을 형성해 나간다.
이번 클레이 워크숍은 내게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놀이터는 우리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몸을 사용해 뛰놀고, 자라서는 관계 속에서 수많은 규칙을 배우며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어른이 된 우리는 여전히 놀이터에서 살고 있다. 다만 그 놀이터는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대신 우리는 마음속에 각자의 놀이터를 짓고,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다시 한번 질문해 보자. ‘당신의 놀이터는 무엇인가요?’
새들은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을 치고 아이들은 놀이를 한다 - 개리 랜드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