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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 yet Oct 09. 2024

근거 없는 열심.



어디로 가고 있나요?



홍콩은 언제나 분주하다. 사람들도 바쁘고, 에스컬레이터 속도도 빨라서 내릴 때 한 눈을 팔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신호등 파란불 소리도 어찌나 정신 없는지 빨리 건너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다.


도대체 이 도시는 정신없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 도시 전체에 고카페인 에너지 드링크를 밤낮으로 펌프질이라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열대성 기후덕에 공기는 습하고 햇살은 뜨겁다. 조금만 걸어도 등에 땀이 줄줄 흐르고 에어컨을 찾아 어디든 들어가게 만든다. 그런데 막상 가게 안에 들어가면 빵빵한 에어컨 때문인지 도시의 속도 때문인지, 얼른 나가 돌아다니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갈팡지팡 두가지 마음이 변덕을 부리는 도시, 홍콩이다.


모두 국수만 먹나 싶을 만큼 국수집이 많다. 이름 모를 국물에 면도 가지 각색이다. 첫 여행에서는 미드레벨 근처 BEP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홍콩까지 가서 소심하게 베트남 국수라니. 이상한 국물에 담긴 면을 후르륵 하기엔 용기가 부족했던 거다.



나의 첫 홍콩 방문은 혼자였다. 낯설고 아는 것 하나 없는 도시에 덩그러니 남겨진채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지도를 보며 무작정 걸어봤지만 구글맵은 제 멋대로 엉뚱한 곳을 가르키고, 중영국식 영어는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덥기는 덥고, 갈 곳을 잃은채 정처없이 걷다 아무 상점에 들어가 쉬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잡은 호텔 덕분에 매일 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도착 첫 날, 내 인생에 더 이상의 홍콩은 없을 거라며 굳센 다짐을 할 정도로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다.





마카오는 더 심각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으로 샤워를 시키는 날씨에, 나름 돈 좀 주고 구한 워터쇼 시간은 다되어 가는데 구글맵은 산을 뚫고 지나가라고 가르쳐주질 않나. 


‘홍콩! 나한테 왜이래?’


어쩔 수 없이 건물을 돌고돌아 공연장까지 마라톤 하프 코스를 뛰어야만 했다. 쇼를 보려고 자리에 앉으니 온몸은 비를 맞은 듯 젖어 있었고, 그냥 나가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게 좋았다. 체온이 내려가니 공연도, 마카오의 휘황찬란한 호텔 불빛도 아름답게 보였다. 산을 오르는 트램을 타고 본 홍콩의 마천루도, 거리 한 복판을 덜컹거리며 돌아다니는 형형색색의 낡은 트램도 마음에 들었다.


생고생을 한 덕에 떠나는 날 쯤 되니 도시의 곳곳이 익숙해져 있었고, 가이드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시 오지 않겠다는 말은 이틀째 날 부터 쑥 들어가 버렸고, 2년 뒤 홍콩행 티켓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



홍콩은 변함이 없었고, 혼이 쏙 나갈 지경이었다. 엄마는 다니는 곳마다 돌발 행동을 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고, 첫날부터 음식 맛이 없다며 먹는 둥 마는 둥 슬슬 짜증이 목구멍까지 밀려왔다.


다시는 엄마랑 여행하지 않을거라며 큰 소리를 쳤지만 그 뒤로도 여러 차례 해외 여행을 다녀온걸 보면, 역시 지키지 못할 약속 따위는 애초에 하는게 아니다.


이번 여행이 버라이어티한 이 도시와의 세번째 조우다.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궁금했는데 이 도시는 시간이 멈춰버린듯 그대로인 곳이 많았고, 반대로 모든게 바뀌어 버린 몇 몇 곳도 있었다.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면 빠지지 않고 빅버스 투어를 하곤 했다. 이제는 마치 신고식을 치루는 것처럼 나만의 의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빅버스는 영국 런던에 갔을 때 처음 타봤다. 막히지 않은 2층 자리에 앉아 쌩쌩 불어오는 초겨울 바람을 맞으며 도시를 내려다 보는게 너무 신이나 매일 타고 다녔을 만큼 좋았다. 덕분에 여행 내내 콧물을 달고 지냈지만, 뭐 그런게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홍콩도 빅버스 투어를 하기에 아주 좋은 도시다. 도심쪽을 달리는 레드라인과 해변을 따라 도는 그린 라인이 있고, 밤이되면 나이트 투어로 이름이 바뀐다. 홍콩에 온 첫 번째 날이라면 레드라인을, 몇 일 동안 길을 헤맨 경험이 있다면 그린라인을 추천한다.



과거에는 쇼핑의 천국이라고 했지만 막상 가면 물가도 비싸고 살만한게 없다. 세일기간에 명품을 사는게 아니라면 더 더욱 그렇다.


신기한 것은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명품을 휘뚜루마뚜루 명품을 온 몸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언뜻 보기에 행색이 허름해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보면 가방이며, 신발, 모자까지 명품으로 깔맞춤을 하고 있다.


서울을 제외하고, 홍콩만큼이나 교통이 좋은 도시도 드문 것 같다. 물론 도쿄도 지하철이나 기차가 잘 되어 있지만 홍콩은 이동수단이 많으면서도 라인이 심플히다. 도쿄와 다르게 뭘 타든 어디로 갈 거라는 예상이 되는 도시랄까.




가장 번잡하고 바쁜 도시를 대부분 뉴욕 맨하탄이라고 말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오히려 홍콩이 한 수 위 였다. 도쿄 시부야 쪽도 정신 없기는 매 한 가지지만 걷는 속도가 다르다.


이토록 바쁜 도시를 할 일 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넋이 나간 사람 같아 보일 수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자발적 방황을 하고 한국으로, 제 자리로 돌아오면 근거없는 ‘열심’이 생겨난다.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 그래.’



이런 미스테리한 현상을 굳이 분석하자면, 홍콩의 분주함이 무너진 멘탈을 다잡기 위해 찾아간 나에게 돌아가 열심을 다하라며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는게 아닐까.


다분히 중국스럽고, 다소 영국스러운 홍콩. 이번 여행을 마치며 다시 올 일은 없겠다 싶었지만 또 모를 일이지. 스타페리를 타고 홍콩섬과 침사추이 사이를 건너며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을지.


그 때 쯤이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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