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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성 Oct 16. 2024

네 잘못이 아니야

나를 위로한 것은 결국 나

어른이 된다는 건 진정한 나를 알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도 싫었던 간호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간호학과에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끝끝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며 살았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들어갔다. 얼렁뚱땅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배움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아동간호학을 배우면서 인간에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릴 때 받는 사랑이 얼마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성장과정을 겪었다고.


그때부터 부모에 대한 원망이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감정이다.

첫 번째로 나를 할머니 집에 데려다 놓고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아빠가 미웠고 

두 번째로 모성애를 갖다 팔아먹은 친모가 미웠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면 정서적으로 지지를 해줘야 하는데 연락이 닿는 아빠는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친척들의 눈초리 속에 방치했으며 할머니 혼자 양육비를 감당하게 했다.

전화 통화를 종종 했지만 통상적인 말뿐이었다. 교류가 있는데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아빠와 거리를 뒀고 단답 또는 성의 없는 말로 대꾸했다. 

어느 때는 날카롭게 쏘아붙이기도 했다. 나의 늦은 반항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렇다고 없던 자존감이 올라가진 않았다. 여전히 걱정이 많고 여렸으며 눈치도 많이 봤다.

그래도 가정에서 일어난 이슈를, 이런 인생이 된 것을 전부 내 탓으로 돌리지 않게 됐다.

그러면서 심리에세이에 흥미가 생겼다. 글귀들이 모여 울컥하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책이 나를 위로해 줬고 책에게 치유를 받았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한 것은 내가 스스로 찾아 읽은 책과 나 자신이었다.


나는 책이 하는 말에 감동했다. 또, 학교에서의 배움을 통해 내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내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 모든 것은 나 때문이며 내 성격은 틀렸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격으로 바꾸려고 노력했었다. 밝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안 맞는 옷을 입으려니까 괴로웠다. 힘들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아니라고 설명해 줬다. 그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고 내가 갖고 있는 고유한 성향일 뿐이라고. 잘하고 있고 잘할 것이며 좌절하지 말라고.  남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보일 필요 없다고 나를 진정시켰다.


나는 그렇게 수만 번의 감정 널뛰기를 겪으며 대학부터 취업 이후, 완전한 독립을 할 때까지 아주 긴 기간 동안 스스로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나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고2때 영어시험 1등으로 영어 선생님께 받은 선물.












아직도 실패하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희망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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