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때문에 어릴 적 동창의 비위를 맞추다가 급기야 물웅덩이에 엎드려 그 친구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하는
굴욕을 겪은 이야기. 아내는 그날 흙탕물에 젖은 옷을 버리지 않고 농에 넣어놓았는데 그걸 발견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분노한다.
내게도 그런 옷이 있었다. 지금은 완전 독립을 했기 때문에 내 물건 하나 남아있지 않겠지만 기숙사 살며 집에 왔다 갔다 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옷은 서랍 안에 접어있었다.
아빠가 찾아왔다. 혼자서 왔다. 처음에는 혼자 왔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는데, 드라마를 많이 봐서인지 나중에는 무슨 일이 있어서 왔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자식들이 꼭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고향에 내려와서 지내다가 부모에게 어떤 고백이나, 부탁을 하는 걸 많이 봤었다.
아빠 또한 여지없이 할머니에게 부탁을 하러 왔던 거였다.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
대화를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보지 못했지만 아빠가 돌아간 뒤 할머니와 고모의 통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여섯 살 무렵이었던 때 이후로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았던 그는 항상 돈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말수가 적어지고 의욕도 사라졌다. 긍정적이었던 마음도 다시 움츠러들었다. 그런 내게 할머니는 넌지시 물었다. 남아공 월드컵 경기가 있던 6월의 어느 밤이었다. 티브이에서는 그리스와의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요즘에 고민 있냐?"
"응? 왜?"
"아니 그냥 고민 있나 하고."
"... 그냥... 공부가 하기 싫어."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던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수능을 1년 반 앞둔 학생이었고 나와 같은 학생들에게 공부의 압박감은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무게였다.
어쩌면 그때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할머니와 대화하려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
"뭣이? 공부가 하기 싫어? 왜! 왜 공부가 하기 싫어, 왜!"
할머니는 갑자기 일어나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옷깃을 잡아챘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멱살을 잡혀봤다.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난 건지 몰랐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컥컥 댈 수밖에 없었다.
몇 십 초에서 몇 분이 흘러서야 그녀는 내 목덜미를 내버려 두었다. 그날 입고 있던 주황색 반팔티의
목은 늘어날 대로 늘어났다.
나는 늘 공부가 하고 싶어야 했을까.
아니, 어떤 고민을 말했더라도 그녀는 말꼬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옷을 버리지 못했다. 일부러 버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