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캔디였다. 정말로 내가 하는 행동을 돌이켜보면 캔디에 가까웠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웃었다. 민망해도 웃고 눈물은 혼자 훔치고 화는 속으로 삼켰다. 겉으론 가면을 쓴듯 웃음만 보이고 다녔다. 나는 드라마나 인소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밝고 씩씩하게 자라는 주인공. 바랐던 그모습이 나는 아니라는걸 알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토닥이기에 나는, 나에 대해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선 중학생 때보다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중학교와 같은 지역의 고등학교로 갔기 때문에 친구의 변화도, 환경의 변화도 크지 않았다. 1학년 때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 멘토-멘티라는 제도하에 한국장학재단에서 장학금도 받고 선생님과 밥도 먹고 선물도 받으며 돈독한 사이로 꽤 괜찮은 1년을 보냈다.
2학년이 되자 담임선생님이 바뀌었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새 선생님과도 곧 친해졌다. 따스한 봄, 학교에서는 가정방문 일정을 잡았다. 내 학교는 읍내에 있는 학교라 애들 집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동선만 잘 짜면 카풀을 하듯 한 명 한 명 집에 내려줄 수 있었다.
선생님을 우리 집으로 올라가는 짧은 언덕길로 안내했다. 걸어서 3분 거리인 집에 사는 내 단짝과 함께였다. 넓은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와 선생님께 집을 둘러보게 했다.
할머니는 노인정에 가 있는 시간이라 집에 없었다. 1학년 때는 있었는데 그날은 없어도 될 거 같아 온다는 말만 하고 부르지 않았다.
선생님은 안 방 벽에 걸린 내 유치원 졸업 사진을 보더니
"이땐 귀여웠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니."라며 농담을 했다.
그는 그날 내가 조손가정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말했다.
"세성이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밝은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솔직히 선생님은 네가 할머니랑 산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어."
"왜요?"
"워낙 밝아서 그런 줄은 몰랐거든."
"진짜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참 밝고 바르게 자란 것 같다. 너도 인정하지?"
고2. 가장 밝았고 가장 의욕적이었을 때. 나는 가난이 싫지 않았다. 자존감은 낮았고 자존심 상할 일은 많았지만 그땐 누굴 원망하지도, 환경을 탓하지도 않았다. 공부가 재밌었고 학교생활이 즐거웠다. 갑자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갑자기 변할 때가 있나보다. 그 변함이 조금만 오래갔으면 좋으련만, 밝았던 시절의 나는 잠깐이었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