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며칠 앞두고 사장님과 면담을 가졌다. 사장님은 “요즘 대만은 날씨가 어떤가?” 하고 묻고는 앞에 있는 수박주스를 드셨다. 그러고는 어떤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면서 책에서 읽은 이야기, 과거에 겪은 이야기 등을 하셨다.
사실 무슨 이야기였는지 대부분은 듣고 바로 잊어버렸는데 대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쑥 떠오른 이야기가 있었다. 사장님이 외국에서 유학 중인 아들 집에 머물면서 겪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들이 가끔은 나랑 놀아줬지만 안 그런 날도 많았거든. 집에만 있기가 뭐하니까 동네 한 바퀴를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는 거야. 나는 카푸치노를 좋아하니까 그걸 주문하지. 그런데 내가 카푸치노라고 하면 계산대에서 꼭 뭐라고 질문을 해. 나는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어. 그런데 다시 말해줘도 못 알아듣는 거야. 겨우 겨우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앉아서 생각하지. 저 사람이 뭐라고 말한 걸까.”
“또 이건 홍콩에서 있었던 일인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적해 보이는 동네에서 내렸거든? 마트가 하나 보이더라고. 그동안 쌓인 동전을 좀 써야겠다 싶어서 이것저것 골라서 계산대로 갔어. 그런데 이게 외국 동전이니까 빨리 안 세어져. 내가 그러고 서 있으니까 계산대 직원이 꽥하고 소리를 지르네? 아니, 소리는 왜 질러?”
그때는 사장님이 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타이중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까.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편의점에서, 마트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서점에서 계산대 앞에만 서면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자꾸 무언가를 물어봤고 나는 그중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했다. 손님으로서 받을 수 있는 질문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봉투 필요하세요? 회원이신가요? 아니라면 가입하시겠어요? 음료는 필요 없으세요? 저희 가게에 와본 적 있으신가요? 밥은 백미로 하시겠어요, 현미로 하시겠어요? 커피에 설탕 넣어드릴까요? 또우화(두부 푸딩)에 얼음 추가하시나요? 금액을 조금 더 추가하면 샐러드와 수프가 같이 나오는데 업그레이드 도와드릴까요?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드리는데 필요하신가요? 커피와 케이크를 같이 주문하면 학생 할인이 되는데 학생이신가요? 아이스크림은 콘에 담아 드릴까요, 컵에 담아 드릴까요? 스테이크 굽기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80퍼센트의 질문에는 “필요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통하긴 하는데 그런 통계도 소용이 없는 게 “저희 가게에 와보신 적 있으세요?” 같은 질문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개를 젓는 바디랭귀지는 훨씬 더 많은 질문을 포괄할 수 있지만 “음료는 어떤 사이즈로 하시겠어요?” 같은 질문에는 통하지 않는다. 한 번은 서점에서 “구매하신 책의 포장지에 스티커를 붙여드려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가 점원이 굉장히 당황한 적이 있다. 스티커를 붙여야만 구매 상품으로 인증되기 때문이었다.
여행 중에는 여행의 즐거움이 훨씬 커서 이런 일은 금방 잊히지만, 살면서 거의 매일 경험하다 보면 몹시 피곤해지고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상대가 당황하거나, 한숨을 쉬거나, 짜증을 내거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는 것도 자주 겪을 일이 못 된다. 사장님은 당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외국 살이라는 게 물건을 구매하는 사소한 일부터 불편할 수 있다’라는 말을.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으니 빨리 귀가 트이는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중국어 공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