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아 Apr 15. 2022

도넛과 치킨이 먹고 싶다

며칠 전부터 입이 심심했다. 밥을 먹고 나서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식후에 빈츠를 두 개씩 까먹었다. 빈츠 상자가 다 비워지자, 편의점에서 2+1 하는 가나 초콜릿을 사 와서 먹었다. 그래도 뭔가가 채워지지 않았다. 더 진한 거, 더 기름진 게 먹고 싶었다. 남해에 와서 식당에서 먹은 음식은 거의 해산물이었고, 숙소에서는 밥에 국, 반찬 몇 개에 가끔 카레나 짜파게티 끓여먹는 정도라 벌써 2주 가까이 엄청 단 디저트나 기름진 피자, 치킨은 구경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삼일 전, 엄마를 만나러 남해터미널이 있는 읍내에 나갔을 때, 던킨을 보고 속으로 ‘읍내 너무 좋아, 최고야!’를 외쳤다. 그러고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성큼성큼 가게로 들어가 카카오허니딥 도넛이랑 에스프레소를 시켜 단숨에 먹어치웠다. 몸속으로 설탕과 카페인이 단비처럼 쏟아졌다. 이병헌 씨의 명대사는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 잔”이 아니라 “커피 앤 도넛”이라고 확신했다.


작년에 교정교열 작업한 도서 《식욕의 과학》에 따르면, 비만의 주범은 설탕인데 지방이 누명을 쓰고 있다고 한다. 지방의 영어 이름인 fat는 심지어 ‘뚱뚱하다’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 마치 사람 이름이 타고나길 ‘범인’인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책에서 살을 찌우는 또 다른 범인으로 지목하는 게 식용유다. 올리브유나 참기름처럼 옛날 방식으로 짜낸 기름은 괜찮지만, 대부분의 식물성 식용유는 만드는 과정이 거의 경유 만드는 것과 비슷하고 오메가6 비율이 높아서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 한다. 식물성이라고 하면 동물성보다 건강에 좋게 들리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서, 식물성 마가린보다 버터가 몸에 좋다는 말도 있었다. 책에서 지목하는 또 하나의 범인은 고도로 정제된 곡물. 크래커, 빵, 파스타, 쌀밥도 먹으면 빠른 시간 안에 몸속에서 포도당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설탕을 먹는 것과 효과가 비슷하다. 특히 시리얼은 그냥 설탕 범벅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 대체 뭘 먹어야 하나. 비만 전문 외과의사인 저자는, 증조할머니라면 ‘이건 음식이 아니다’라고 했을 음식을 끊으면 살이 빠진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맛있는 게 너무나 많다. 오늘 나는 기름진 음식이 너무도 당겼다. 하지만 여기 숙소에는 배달 음식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큰마음 먹고 걸어서 40분 거리에 있는 맘스터치에 갔는데, 놀랍게도 쉬는 날이었다. 결국은 편의점에서 냉동 닭강정을 사서 돌아왔다. 우리 언니는 작년 겨울에 단백질 셰이크를 맛 별로 사더니 다이어트를 할 거라고 했다. 나는 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도 《식욕의 과학》에서 배운 건데, 굶어서 살을 빼면 거의 대부분 원래 체중보다 더 살이 찌는 역풍을 맞는다. 몸에서는 다이어트를 하는 건지, 기근이 들어서 밥을 못 먹는 건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의 긴 역사상 후자일 거라고 이해하고 적게 먹어도 쉽게 살이 찌는 체질로 몸을 바꿔놓는다. 그러면 더더욱 살을 빼기가 어려워진다. 다이어트 초반에 삼사 킬로그램 살이 빠지는 건 간에 든 수분이 빠져서 그런 거다. 결국 자본주의는 모든 게 돈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에 단 음식 만들어서 팔아놓고, 살찌면 운동하라고 헬스장 등록하게 하고 단백질 셰이크 만들어 판다. 스트레스 왕창 받게 만들어놓고 스트레스 받았으니 호캉스도 가고 명품도 좀 사라고 한다. 남해 시골에 있으면서도 도넛과 치킨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 참 어렵다.

이전 09화 스르르 잠드는 게 얼마 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