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노예는 종이 한 장 차이

100억 한 장 차이?

by 박한얼 Haneol Park


어느날 친구가 말했다.

"신과 노예는 종이 한 장 차이."


관점에 따라 신과 노예는 같은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일을 덜 하는 승진이 어디 있어요!" 신처럼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일의 노예가 된다는 모순다. 어차피 우린 모두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랑 잘 맞는 사람과 장소를 가려내고 고를 줄 아는 것도 세상 사는 지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있는 그대로여도, 어딜 가나 날 욕할 사람은 욕하고 인정할 사람은 인정해주니까. 나의 이런 가치관은 언제나 통했다.






사람과 장소뿐만 아니라 또 가려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알고리즘. 알고리즘은 우리를 우물 안의 개구리로 만들어버린다. 관심이 가서 봤을 뿐인데, 그것을 데이터로 삼아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만을 선별해 끊임없이 노출시켜준다. 그렇게 우릴 가두고, 중독시켜서 자본의 흐름에 이용당하게 만든다. 쏟아지는 자본주의, 외모지상주의, 결과중심주의, 극단으로 치닫는 콘텐츠들을 가려서 볼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우리가 보는 것들의 절반은 광고다. 거르고 또 걸러내고, 내게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할 줄 아는 건 정보화 시대에서 꼭 필요하다. 어린아이가 스마트폰을 이용할 때 부모님의 주의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차별하게 받아낸 정보들이 우리 몸 안에 악마처럼 기생하며 영혼을 쪽쪽 빨아먹게 될 것이다.


우리는 스마트폰 속 거짓말들을 보면서 지갑이 열리거나 자신과 비교하고, 비참, 혹은 교만해진다. SNS에서는 비교 대상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이런 불편함을 의식할 줄 아는 사람들은 사용을 자제하거나 본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은 스스로 걸러내기도 할 것이다. 피해 가야 할 것은 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일본 드라마 제목인데 인상적이었어서 생각났다.)


유튜브 채널 '오마르의 삶'의 오마르님께서는 인스타그램을 "최대한으로 압축되고 포장된 각자의 엄선된 행복들만 모여있는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이라고 표현하셨다. 조그만 네모 상자 안에 올라온 천사 같은 아기가 사실은 하루 동안 몇 시간을 울고 몇 개의 기저귀를 갈아입는지는 나와있지 않다고. 사실은 정말로, 이렇게 조금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세상은 아예 다르게 보인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는지'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알고리즘과 SNS를 활용해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이 있다. 알고리즘은 함정임과 동시에 일반인들도 돈이나 명예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기회인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SNS 인플루언서나 부자들은 다 누리고 사는 거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아는 억만장자 빌 게이츠는 하루 종일 일 한다고 하신다. 워라밸이 없으시다고. 삶이 곧 일이라고 인터뷰 하셨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또 다른 자유를 얻으셨다. 바로 경제적 자유. 돈은, 우리를 시간과 자유의 특권을 가진 자와 갖지 못 한 자로 나누어버린다.


노예제 사회에서 벗어난 지 한참 된 현대에 살고 있는 나는 친구의

"신과 노예는 종이 한 장 차이."

라는 말을 듣고 또 생각난 것이 있다.

'100억 한 장 차이?'... 가끔은 돈이 우리를 신인지 노예인지 판가름해 주기도 한다. 우리들은 그걸 알고 있고, 자본이 낳은 괴물(Industry baby)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렇기에 난 어떤 욕망을 추구할 것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빨리 알아내고 싶다. 갈수록 돈 때문에 알기 어려워질 것만 같다. 돈을 좇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동시에 좇기도 해야하니까... 아직은 내게 참 막막하고 슬픈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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