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조금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친구들은 항상 내게 부지런하다고, 열심히 산다고 한다.
"내가 기준이 너무 높은가?"
"그럴 수도. 매일매일 알차게 보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달을 돌아봤을 때 많은 걸 하지 않았을까?"
맞는 말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알차게 보내긴 힘들다. 게으르고 싶은 자의 핑계일 수도 있지만 요즘 드는 생각이, 동심은 지키되 환상은 잃어야 하는 것 같다. 우린 도달할 수 없는 환상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자꾸만 상처를 준다. 그래서 기준이 낮으면 좋다.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만족하는 일들이 많아지니까.
'난 가끔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해'라는 가정폭력 관련 에세이를 인상 깊게 읽고 작가님께 메일을 보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사실 아직도 괴롭다고, 작가님처럼 이겨내고 싶다고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올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못했는데, 며칠 뒤 답장이 왔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 또한 그것을 이겨낸 사람에게 받는 답장에 담긴 위로는 진심으로 와닿았고, 큰 도움이 됐다. 이 좋은 소식을 친구들에게 알렸다.
"역시 넌 되게 부지런 해."
"작가님한테 메일을 보내다니... 그냥 부지런함으로는 못 해."
다들 나의 부지런함에 놀란 눈치였다. 나는 그 눈치에 놀랐다. 내 느낌을 따라 자연스럽게 한 행동이 친구들에겐 부지런한 행동으로 보였다는 게 신기했다. 친구는자신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또, 되돌아보면 꾸준히 하고 있는 것도 많고 며칠 정도 놀았다고 엄청나게 게으른 건 아니라고, 꼭 매일매일 알차게 보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불행한 일이 있었을수록, 사는 거 자체가 그냥 대단하다.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고 망가질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멀쩡하게 산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사람에 높낮이는 없다, 다름이 있을 뿐. 기준이라는 것도 사람이 정하는 것이고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럼에도 나쁜 일이 일어났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게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우린 언제나 다른 상황에 놓인다. 당장 내일 일을 알 수도 없다. 바쁘게 살아야만 했을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경쟁이 당연한 우리들은 쉴 수 있는 날에도 편히 쉬지를 못한다. 항상 누군가가 뒤쫓아오는 것만 같고, 돈이 나를 가로막는 것 같고, 항상 달려야만 할 것 같고 지금보다 더 잘 살아야 할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얘가 부럽고 쟤가 부럽다. 스마트폰 세상 속에는 저런 넓고 멋진 게 있는데 나는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영원히 그럴 것만 같다.
그런데, 그냥 자기 상황에 맞춰서 잘 살자.남의 상황이 아닌, 자기 상황. 환상이 아닌, 이상으로. 어떻게 보면매일 꽉 채우진 않지만 지금 해야 하는 걸 하고 있잖아. 잠도 푹 자자.어려우면 도움을 청하자.꿈은 크게 꾸고 현실과 타협할 줄도 알자. 내 한계를 알자. 그럼에도 사소한 것에 자신감을 잃지는 말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자. 평범한 우리들의 특별한 매일,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