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네 개의 작품이 내가 유일하게 봤던 거 또 보고 1년에도 몇 번씩 생각날 때마다 보는 것들이다. 키덜트(Kidult)인 내게 이 만화들은 볼 때마다 새롭다.
짱구라는 캐릭터와 크레용 신짱이라는 만화는 내 일상에도 자연스레 녹아있다. 오죽하면 나의 이러한 취향을 잘 아는 친구가 내 별명을 크레용 박짱이라고 지어줬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짱구를 좋아한다, 다들 왜 이렇게 짱구를 좋아하는지, 우스이 요시토 작가님이 그려낸 짱구란 캐릭터가가진 매력과 살아가는 방식은 어떤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네 번째 주제로 쓰게 되었다.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하고 설명해주는 'MBTI'가 아직까지도 인기가 많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데, 사람뿐만 아니라 캐릭터도 성격에 따라 MBTI 유형을 매칭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짱구는 만화 속 성격상 'ENTP'으로 외향적이고, 직관적이고, 사고적이고, 인식하는 유형이다. 사실 비율의 차이일 뿐인 데다 누군가의 성격을 ‘외향적’, ‘내향적’ 이런 단어로만 규정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너무나 복합적인 사람의 성격을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그리고 은근 과학이다.)
나는 4년째 검사할 때마다 INFP가 나오고 있는데,짱구의 외향적이고 단순 명료한 부분이 참 부럽고 닮고 싶다.
난 사소한 것에도 예민하게 신경을 쓰고, 감정 때문에 생각을 하고, 생각 때문에 감정이 생긴다. 항상 끝없는 아이디어들과 감정의 굴레에 빠져 있다. 그래서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작은 단위로 섬세하게 혹은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INFP는 더욱더 입체적인 관점을 가져야 하고 그릇이 커야 하는 성격 유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섬세함을 감당해낼 마음의 크기가 부족할 때, 소심하게 어떤 한 부분에만깊이 빠져들 때 멘탈이 무너지기 쉽다. 우울함도 다른 성격 유형들보다 비교적 더 쉽게 느끼는 편인 것 같다.
짱구는남을 위할 줄 알면서도 남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다.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
나는 짱구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어쩌면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닮고 싶고, 따라 하고 싶고. 나와는 다르게 당돌한 모습이 볼 때마다 신선하게 와닿는다. 난 남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생각이 불분명할 때도 있지만 또 의외로 고집이 세서 강요할 때도 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나 스스로의 단점을 짱구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알려주는 것먼 같다. 짱구의 자유분방한 표현들 덕분에 살아오던 방식으로만 사는 삶의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오는 기분도 든다. 나와 비슷하게 느끼고, 인식(NP)하면서도 정 반대로 해석하고 표현(ET : IF)하는 게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어떤 작품을 보면서 공감과 참신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 알고 있고, 그래서 짱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주신 우스이 요시토 작가님께 갑작스레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짱구가 상대방을 부정하는 태도를 가지지 않은 점이 늘 좋다. 어렸을 때 가정환경에서 자기감정이나 의사 표현을 무시당하고 억압받으면 나중에 커서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주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면 그런 성향이 생기기도 한다. 자기 존재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는데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존중할까. 그런데 짱구는 엄마에게 아무리 혼이 나도 기죽지 않고 억압 당하지도 않는다. 짱구 아빠 신형만도 사직서를 내려다 짱구의 우직하고 올곧은 모습(엄마에게 아무리 꿀밤 맞고 혼나도 기죽지 않는 뻔뻔함)에 감동받아 회사에 다시 출근할 용기를 얻는 에피소드도 있다.
짱구는 항상 “그렇구나”라는 수용적 태도로 세상을 대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도 안다.
나는 10대가 될 때쯤부터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 폭력과 방임이 심했고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아빠처럼 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항상 내재한다. '내 몸 안에 저런 피가 흐르고 있는 거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도 한다. 실제로 간혹 아빠와 나에게서 묘하게 닮은 점이 느껴질 때 정말이지 끔찍한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밉다면 내가 가진 추한 모습 중에 하나가 그 사람에게서 보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짱구는 성격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정에 충실한 아버지와 자식들에게 항상 일관적이고 솔직한 어머니(거짓말을 해도 짱구에게 매번 들킨다), 짓궂지만 귀여운 여동생, 똑똑하고 착한 애완견. 이러한 특징들이 나의 가정환경과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내가 평생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들을만화를 통해 대리 만족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정말로크레용 박짱이 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여러분도 혹시 평생 갖지 못할 것이란 걸 아는 무언가를 다른 것을 통해 충족하신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