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티 한 점 없는 완벽한 가을 날씨였다. 밖을 나와 맞는 아침의 찬 공기는 오히려 몸의 활력을 돋게 해 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그리니치 빌리지로 향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어느 곳보다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구글 맵에 표시되어있는 나의 위치가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나의 심장 박동은 점점 빨라졌다. 코너를 돌자 저 멀리서도 나는 그녀의 집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캐리와 그녀의 친구들이 계단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던 곳, 빅의 자동차가 줄곧 세워져 있던 곳, 높은 하이힐을 신은 그녀가 폴짝폴짝 뛰던 바로 그곳의 전경이 드디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시간은 정오를 넘어 한창 점심을 먹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많은 팬이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홀로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 보았다. 그러던 와중 유럽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한 여성에게 폴라로이드 촬영 부탁을 받았다. 나는 기꺼이 “Sure.”이라 답했다. 한 쪽 눈을 찡그린 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치켜들자 그녀와 그녀의 친구는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활짝 웃어 보였다. 그들을 보자 사진기사 노릇을 하던 나마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에 있는 이들도 섹스 앤 더 시티를 보고 과연 나와 같은 감정들을 느꼈을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나를 포함하여 이곳에 있는 이들이 비록 주인공 ‘캐리’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진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아마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리고, 분명 그들도 나처럼 언젠가 뉴욕에 가게 되면 꼭 캐리가 살던 집을 가보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기념사진을 다 찍고 돌아가는 그들의 얼굴엔 꼭 새 전구를 단 것처럼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 미소엔 하나의 꿈을 이룬 기쁨이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꿈’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드라마에 나온 촬영지를 방문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겐 한낱 보잘것없는 일이라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작은 꿈이 내게 미친 영향이다. 작은 꿈이든 큰 꿈이든 꿈의 크기에 상관없이 내가 그 꿈으로 인해 느낀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오믈렛과 오렌지 주스로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내가 간 곳은 워싱턴 스퀘어 파크였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깔린 화창한 오후, 강렬한 햇볕이 피부에 따갑게 내려앉았다. 샐러드 또는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홀로 사색에 잠긴 사람들, 잔디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이어폰을 꽂고 이것저것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들, 목줄을 끌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심지어는 분수대에 상의를 벗어던지고 썬텐을 하는 사람들까지. 모두들 완벽한 이 날씨를 즐기러 이곳에 한데 모여들었다. 공원에서 만들어지는 분주한 소음은 오히려 두 귀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나 또한 시끌벅적한 군중 틈에 섞여 나만의 시간을 보내었다. 그렇게 나도 눈에 보이는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갔다.
도심 속 곳곳에 자리한 뉴욕의 공원은 다른 공간과 다름없이 활기가 넘친다. 머리가 센 노인들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는 황량한 한국의 공원과는 영 딴판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모두들 암묵적으로 약속을 한 듯 가까운 공원에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녹음이 우거진 공원은 뉴욕 시민들에게 도심 속 근사한 쉼터가 되어준다. 사람들은 마치 제 권리를 행사하는 것 마냥 자주 공원에 출몰한다. 365일 작은 파티가 열리는 곳. 초대장이 없어도 언제든 파티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곳. 뉴욕의 공원이 나는 좋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 십 오분 정도 걸으니 금세 소호에 도착했다. 소호 거리는 생각보다 꽤나 한산했다. 길거리 곳곳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숍이 즐비했으며, 카페테라스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거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나도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간절했다. 마침 바로 앞 근처에 커피숍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침부터 꽤 많은 거리를 걷느라 다리가 아팠지만 조금 더 걸어 커피도 파는 아메리칸 레스토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저녁이면 Bar로 변하는 이곳은 아직 낮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종업원이 창가 자리가 괜찮냐는 말에 나는 한 치의 고민 없이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과 와플 하나를 시키기로 했다. 여행자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메뉴판을 가져다주면 내가 시키고 싶은 메뉴를 손으로 가리켜 직원에게 "This one."이라는 말을 하면 그만이다. 나는 이번에도 별 무리 없이 성공적으로 주문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주문을 하는 와중에 직원이 알 수 없는 영어로 나에게 물어왔지만 나는 아무 문제없다는 듯 “Yes.”라고 답했다.
이윽고 무거운 커피잔에 새까만 커피가 담겨 나왔다. 커피를 홀짝이며 바깥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꽤나 근사한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기다리던 와플도 나왔다. 나는 얼른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와플 한 조각을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나 입속에 털어 넣은 와플은 내가 예상하던 맛이 전혀 아니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전해져 오는 퍽퍽함이 왠지 비쩍 마른나무껍질을 씹어 먹는 것만 같았다. 주문을 하던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 곰곰이 떠올려보니 직원이 묻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며 번뜩 눈이 뜨였다.
그렇다. 직원이 내게 물어온 것은 바로 밀가루의 유/무였던 것이다. 내가 시킨 것은 글루텐 프리. 밀가루가 아닌 메밀로 만들어진 와플이었다. 그래서 씹으면 씹을수록 부드럽긴커녕 퍽퍽한 맛만 느껴졌던 것이다. (직원은 내게 글루텐 프리와 버터밀크 두 종류가 있는데 글루텐 프리가 괜찮냐고 물었던 것이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Yes!”를 외친 것이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조각내 놓은 와플에 황급히 시럽을 뿌려보았지만, 결국 나머지 반 덩이를 그대로 남길 수밖엔 없었다. 이런 사소한 실수마저도 웃으며 툭 털어낼 수 있는 여행 중의 작은 해프닝. 나는 무거운 커피잔을 들어 식은 커피를 마저 삼켜내었다.
비상계단이 돌출되어 있는 낡고 오래된 건물들. 얼핏 봐도 몇십 년은 훌쩍 넘어 보인다. 나는 소호의 역사 깊은 건물을 배경 삼아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누른다.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공용 주차장의 아저씨들도 웃으며 기분 좋게 한두 마디씩 건넨다. 나도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은 미소로 화답한다. 발걸음을 옮겨 가던 길을 마저 가려던 찰나 낯선 할아버지가 웃음을 띤 얼굴로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내게 말을 건넨다. “I've been watching you take pictures for a while and it's really beautiful!” 그의 칭찬 한마디에 내 마음엔 금세 부드러운 봄바람이 나부낀다. “Thank you." 뉴욕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도 쉽게 미소와 칭찬을 내어준다. 마치 미리 준비한 쿠키와 따듯한 커피를 건네듯. 그들에겐 그것이 체감조차 할 수 없는 일상 속 빈번한 일에 불과할지라도 뉴욕에 여행 온 내겐 그것마저도 강렬한 기억의 잔상으로 남는다.
우체통과 가로등 몸통, 그리고 횡단보도 옆 신호제어기까지 덕지덕지 붙어있는 스티커들과 그라피티. 나는 그런 작은 곳 안에서도 뉴욕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건물 곳곳에 그려진 낙서들마저도 내겐 뉴욕을 되새겨주는 소중한 흔적이다. 낯선 풍경이 주는 신선함. 타지에서 ‘이방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내 시야에 놓인 이 모든 것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묵직한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쥔 채 분주하게 셔터를 누른다. 그 풍경이 길거리에 즐비한 뻔한 브랜드숍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몇 컷의 사진을 찍은 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거리의 풍경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불현듯 키가 무척 큰 남자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쪽 풍경은 별로야. 저쪽 풍경이 예쁘고 끝내줘.” 나는 이미 소호 거리를 지나온 와중이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길을 지나치지 않고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You Chinese?” “No, I'm from South Korea.” 그와 나는 거리 한복판에서 대화를 쭉 이어나갔다. 그는 “이 근방의 거리는 지금 공사 중이라 사실 별로 볼 게 없을 거야.”라는 말을 다시 덧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Marc라며, 괜찮다면 내일 점심 식사를 같이하거나 토요일 밤에 보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는 딱히 거리낄 게 없어 그의 아이폰에 나의 이름과 이메일을 입력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See you tomorrow at lunch.”라는 말을 남기고, 지하철역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하며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이 늘상 있는 일처럼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Hello, New York, Hello Stranger. 내게 이런 일은 그저 반가울 뿐이다.
외로움이 있기에 이만큼이나 성장할 수 있었다. 외로움이 주는 영향은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6,882 마일이나 떨어진 타국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를 뼈저리게 되새겨준다. 한국에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과 뉴욕에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모두 다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 외로움이지만, 아는 이 하나 없는 뉴욕에서의 외로움은 무언가 더 철저하고 처절한 외로움이다. 나 이외의 사람들이 모두 다 생면부지인 이곳에서 나는 감히 그 외로움을 쉽게 즐길 수만은 없다.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은 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나를 뺀 모든 사람이 내는 대화 소리를 들으며 음식물을 구겨 넣는 것이다. 배를 채우고 은은한 조명 속에 비친 그들의 행복한 얼굴을 쳐다보는 일밖엔 할 수가 없다. 이곳에서 나는 출신을 알 수 없는 한 명의 동양인일 뿐이다. 어설픈 영어를 구사하는 한 명의 관광객일 뿐이다. 어느 주체에도 섞일 수 없는 하나의 객체일 뿐이다.
마르게리타 피자와 제로 코크. 홀쭉하던 배는 이내 무거워졌지만, 밤거리를 걷는 나의 마음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뉴욕에 오면 내 뒤를 줄곧 따르던 외로움을 쉽게 떨쳐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걸까? 혼자 여행을 하면 광활한 자유로움에 거침없이 날갯짓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걸까? 나의 오만함에 보란 듯이 원 펀치를 날리는 외로움이란 녀석. 나는 그 녀석과 함께 뉴욕의 떠들썩한 밤거리를 걷는다. 낯선 이들이 붐비는 밤거리를 걸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토록 꿈꾸던 여행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건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인 걸까?’ 여행을 떠나온 첫 주엔 나는 그렇게 처절한 외로움에 나의 전부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차츰차츰 외로움에 나의 몸을 적셔갔다.
혼자라는 사실이 더 이상 괴롭지만은 않을 때, 마침내 나는 한국이든 뉴욕이든 어느 곳에서든지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자 나는 어디서나 이따금씩 찾아오는 외로움에 더 이상 몸서리치지 않을 수 있었다. ‘혼자’로서의 시간을 오롯이 견뎌내고, 인내하고, 즐기는 것이 여행을 떠나온 내가 단단하게 바뀌는 과정이었다. 외로움에 겁내고 숨지 말 것. 외로움에 충분히 내 곁을 내어줄 것. 그것은 내가 뉴욕에서 배운 하나의 값진 사실이었다.
내가 꿈꾸는 사랑의 종착이란 이렇다. 평생의 단짝으로 영원을 약속하는 것. 서로의 얼굴에 잔주름이 하나둘 늘어나고, 매끈한 두 손에도 생계의 고단함이 그려지는 걸 확인하는 것 말이다. 이 곳, 뉴욕에서는 두 손을 꼭 잡고 거리를 거니는 노부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은 비단 거리뿐이 아니라 미술관, 공원, 레스토랑에서도 자주 보이곤 한다. 구태여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보낸 세월만큼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는 노부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괜스레 뭉클해지곤 했었다.
그렇게 나 홀로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어치우는 와중에도 나는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테이블 위 촛불을 사이에 두고, 조용히 와인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아마 그들에겐 그것이 그저 일상의 한 부분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허나 내게 그 장면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로맨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내가 줄곧 꿈꿔오던 먼 훗날의 미래와 그들의 모습이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덕분에 먼 훗날 나이가 들어도 근사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과 와인 잔을 기울이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은 조금 더 확실해질 수 있었다.
거리를 거닐고, 미술관에 가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랑의 흔적들. 조금 낡고 바랐어도 중요한 건 서로의 곁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 수많은 흔적들로 말미암아 나는 이 곳, 뉴욕에서도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먼 훗날 나이가 들어도 두 손을 꼭 잡고 거리를 거닐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