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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캐리

by 최다은

DAY 5

새 신발이 필요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개개인마다 물론 다를 테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새 옷이나 새 물건을 산 경험은 모두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여행을 핑계 삼아 뉴욕에서 신을 새하얀 스니커즈를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뉴욕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 첫 개시를 했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소호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양발의 뒤꿈치가 따끔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제야 양발의 뒤꿈치가 모두 까져 신발 뒷부분에 벌건 피가 묻게 된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새 신발이라 함부로 구겨 신을 수도 없는 노릇에 나는 뒤꿈치가 까진 그대로 숙소에 갈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확인한 양발의 뒤꿈치는 예상대로 가히 처참했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왼쪽 발의 옆 부분엔 물집까지 잡혀버리게 되었다. 애초에 런닝화가 아닌 이상 새 신발을 신고 여행을 한다는 건 무모한 생각이었을지도. 나는 급한 대로 미리 챙겨 온 연고와 반창고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새 신발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아침 일찍부터 나이키 매장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로고이기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나이키 매장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애꿎은 백화점에 들어가 텅 빈 로비를 서성이다 나는 겨우 근처에 있는 신발 복합 상점을 찾아 들어갔다. 그곳은 나이키뿐만 아니라 모든 신발을 사이즈 별로 파는, 말 그대로 신발 복합 상점이었다.


내 발 사이즈는 260mm으로 평소 구두를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260mm 그 이상의 구두들마저도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신발을 신는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내게 맞는 신발들을 꺼내보고, 또 신어보았다. 비록 지금 내가 사야 하는 건 발이 편한 운동화였지만 매끈한 디자인의 구두를 신어보고, 그에 맞는 옷차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부푼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에 몇 걸음을 걷는지 알기 때문에 오랜 고민 끝에 나는 평소엔 잘 신지 않는 투박한 디자인의 나이키 런닝화를 사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박스를 꺼내려던 찰나 내 눈에 회색의 얄팍한 스니커즈가 띄었다. 금세 닳을 것 같긴 했지만 맨발로 신기에도 편하고, 신어보니 착화감도 푹신푹신하니 꽤 좋았다. 나는 바닥에 꺼내놓은 나이키 런닝화를 다시 제자리에 넣어두고, 스니커즈가 담긴 연보라색 상자를 품에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의 왼쪽 손엔 이내 신발 상자가 담긴 흰색 봉지가 쥐어졌다. 어떻게 보면 돌고 돌아 결국 또 다른 스니커즈를 산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새 신발이 주는 들뜬 기분을 그대로 즐기기로 했다.


사라 배쓰

숙소에 들려 새로 산 신발로 갈아 신은 다음 트렌치를 걸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전날에 비가 온 터라 날씨가 조금 쌀쌀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5 애비뉴 스테이션에 내려 센트럴파크 지점에 있는 사라 배쓰에 갔다. 점심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북적였고, 웨이팅 줄도 언뜻 보였다. 문 앞에 있는 직원에게 두 번째 손가락을 올려 한 명이라고 말하자 이름을 묻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30초도 채 되지 않아 내 이름이 불리고, 멀끔한 유니폼 차림의 직원이 안내를 도와주었다. 혼자라 좋은 점은 이렇게 웨이팅 줄에 끼지 않고, 쉽게 프리 패스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얀 식탁보가 놓인 곳에 앉아 가볍게 팬케이크 하나와 따듯한 카페 라테를 시켰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섹스 앤 더 시티> 속 그녀들이 브런치를 앞에 두고 수다를 떠는 장면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그녀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같이 수다를 떠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윽고 버터와 시럽, 딸기가 놓인 단출한 밀크 팬케이크가 나왔다. 나는 목에 걸고 있던 헤드셋을 내려두고 느긋이 브런치를 즐기기 시작하였다. 뉴욕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서 나에겐 한 가지 버릇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버릇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부드러운 팬케이크 조각을 우물거리며 나와 가까운 테이블의 사람들을 흘깃거렸다. 어떤 메뉴를 시켰는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그들의 대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숨 죽은 고독을 죽여 갔다.


그냥

여행에 온 뒤로 내겐 아무 생각 없이 뉴욕을 느끼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특별한 계획 없이 뉴욕의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관광객의 시야에서 벗어나 뉴욕이 일상인 뉴요커의 시야로.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시야에 보이는 모든 피사체는 새로웠고, 신선했다. 새로 산 신발 깔창이 푹 꺼질 정도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날이 흐려 어두웠다. 얼마나 걸었는지 발이 욱신거려 나는 카페에서 조금 쉬기로 했다. 하지만 카페 안엔 별다른 공간이 없었고, 나는 밖에 놓인 빈자리를 두리번거리다 그나마 한적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주문한 밀로 아이스를 홀짝거리며, 나는 백팩에 넣어둔 책을 꺼내 조금씩 읽어나갔다. 그러나 책을 읽는 와중에도 옆 옆에서 두 사람씩 모여 얘기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나도 누군가를 붙잡고 나의 얘기를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게 아니라면 나를 안아줄 따듯한 햇살 한 줄기가 절실했다. 어둡고 흐린 날씨 탓에 두 손은 금세 차가워졌다. 어쩐지 책에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진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탑 오브 더 락

숙소에 도착해선 몸을 뉘일 시간도 없이 입장권을 챙겨 급히 밖으로 나왔다. 탑 오브 더 락에 올라가기 위해선 내가 정해놓은 입장 시간의 30분 전엔 가 있어야 했는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숙소에서 탑 오브 더 락까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얼추 시간을 맞출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혹여 늦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34st 해럴드 스퀘어 역에서 탑 오브 더 락이 있는 47-50st 록펠러 센터 역까지는 대략 십 분 정도가 걸렸다. 나는 지하철역에서 나와 건물 안에 다다를 때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입고 있던 옷이 땀에 조금 젖어 있을 정도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서 나는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천천히 들어갔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는 온 순서대로 줄을 서서 약 15분간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한 영상을 보아야만 했다. 마땅히 앉아 있을 곳도 없었기 때문에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영상이 모두 끝나고, 드디어 내가 섰던 줄의 차례가 오게 됐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앞서 입장한 사람들로 꽉 차게 되었다. 자기 차례를 기대하던 사람들도 자연히 뒤로 물러났다. 나 또한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겠단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엘리베이터를 지휘하는 가드가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혼자인 나는 운이 좋게도 온 순서보다 먼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우주선을 탄 것처럼 빠른 속도로 상공으로 올라갔다. 귀가 먹먹해지는 구간을 지나 67층에 내리자 유리창 곳곳에 뉴욕의 높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탁 트인 하늘에 높이 솟은 건물들의 풍경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따스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전경을 찍고 있었다.


나는 오래된 버킷리스트를 이룬 것처럼 마음이 벅차올랐다. 유리창 너머에 있는 수많은 건물 가운데 우뚝 솟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자 다시금 뉴욕이구나, 하는 사실이 생생히 다가왔다. 일몰이 다다를 때까지 나는 출입문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해가 저물 때 즘에 맞춰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67층보다 3층이 더 높은 70층이었다. 해가 저 너머로 기울면서 푸른 하늘에 횡의 방향으로 붉은 노을이 번져갔다. 무채색의 건물들도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했다. 유리창 앞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늘이 완전히 새까매지고 난 뒤로는 뉴욕 일대를 덮고 있는 수많은 빌딩이 노란 불빛으로 수를 놓았다. 한국에 가고 나서도 이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하자. 그 생각에 나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금요일 저녁

일몰의 전, 후를 다 감상하고 나서는 제리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제리는 벌써 식당 앞에 기대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바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스테이크를, 제리는 햄버거를 시키고 CRISPIN이라는 맥주도 각각 시켰다. 식당 안은 불금을 즐기러 나온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세계 어디서나 평일의 마지막, 금요일은 핫한 모양이었다. 나는 탑 오브 더 락에 대한 따끈따끈한 감상을 제리에게 말해주었다. 굉장했다는 나의 표현에 제리 또한 동의하였다. 그리고 탑 오브 더 락 말고도 뉴욕에 여러 전망대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의 여행과 제리의 일상 얘기는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곧이어 감자튀김이 수북한 스테이크와 햄버거가 우리 테이블 위로 도착했다. 맛은 그럭저럭 이었다. 그리 뛰어나지도 형편없지도 않은 평범한 맛이었다. 제리는 큼지막한 햄버거를 우물거리며 어릴 때부터 햄버거를 좋아해서 맥도날드에서 파는 해피밀을 너무 좋아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건강을 생각해서 햄버거를 먹는 횟수를 줄였지만 아직도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여전히 햄버거라며 내게 고백했다. “그래서 네가 마른 거야.” 나의 농담에 우리 둘은 킬킬거렸다.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감자튀김을 꾸역꾸역 먹다 보니 물려서 들고 있던 포크를 그만 내려놓았다. 제리의 접시에도 먹지 않은 감자튀김이 길 위에 나뒹구는 낙엽들처럼 쌓여있었다. 시킨 맥주가 아직 조금 남아있었지만 우리는 일어나기로 했다. 각자 몫의 현금을 테이블 위에 내려두곤 벗어놓은 외투를 입고 나갈 채비를 하였다. “I hate tip culture.” 제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늦은 밤까지도

이제는 익숙한 뉴욕의 밤거리를 가볍게 걷는다. 적당한 온도, 선선한 바람, 신선한 풍경. 걷기에 모두 충만한 조건이다. 다리가 퉁퉁 부어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밤 산책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나와 제리는 번역기를 켜지 않아도 대충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비록 초등학생 수준의 어휘 실력이지만 우리는 어려움 없이 서로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여기 혹시 압박 스타킹 파는 곳 없어?” 빽빽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면 퉁퉁 부어 있는 두 다리를 그대로 지켜만 볼 수만은 없었다. “압박 스타킹? 아마도 아마존에서는 팔 것 같은데. 드럭스토어라도 둘러볼까?”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늦은 밤에도 불이 켜진 드럭스토어로 곧장 갔다. 여러 의약품이 늘어져 있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찾는 압박 스타킹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봄에 떠난 도쿄 여행이 쏜살같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일본이라면 압박 스타킹은 물론 몸에 좋은 별 물건을 쉽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압박스타킹에 대한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조금밖에 남지 않은 오늘의 끝자락을 좀 더 붙잡아 보기로 했다. 몸은 이미 무거운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지만 기분 좋은 금요일을 이대로 그냥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쉬우니까.


내 이름은 캐리

What’s your name?이라는 질문에 내 이름 끝 글자 Eun을 답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귀엔 언제나 Yeon이라는 호칭이 들려오곤 했다. 그럼 나는 픽업 대에 나온 음료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들고 가곤 했다. 뉴욕에 있는 동안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필명이 필요했다. 그때 불현듯 스치는 이름 Carrie. 오랫동안 숨겨진 양말 한 짝을 찾은 기분이었다. 비록 마티니를 즐겨 마시진 않아도,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신고 있진 않아도, 펜디 백을 들고 있진 않아도 나는 ‘캐리’가 될 수 있었다. Carrie라고 내가 정한 필명이 불리면, 나는 이전과 다르게 흐뭇한 표정으로 픽업 대에 갈 수 있었다. 뉴욕이 내게 선물한 이름 캐리. 그들이 알고 있는 건 고작 내 필명 하나뿐.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그냥 ‘Carrie’인 것이다. 내 이름은 캐리. 뉴욕과 사랑에 빠진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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