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 투성인 남편
작년 봄은 내 인생에 있어 최악의 시기였다.
마흔을 앞두고 마음이 조급해졌더랬다. 자연적으로 아이가 생기면 좋았겠지만 결혼 3년 차가 되도록 그런 일은 없었다. 매달 작은 증상도 크게 받아들이며 임신테스트기를 해보는 마음, 그리고 곧이어 실망감에 서글퍼지는 마음. 그 마음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승현 앞에서도 티 내지 않았다. 혹시나 그가 버려진 임신테스트기를 볼까 챙겨놨다가 밖에 나가 버리곤 했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후배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다. 어떻게 저렇게 명쾌하게 답을 내리고 살 수 있을까. 나도 확실한 노선을 정하고 싶었다.
어느 아침, 그날도 혹시 몰라 임신테스트기를 해보았던 날이다. 결과는 한 줄이었고 마음이 쓰렸다. 나는 서재방으로 조용히 들어와 인공수정과 시험관에 대해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말만 들어봤지 인공수정은 무엇이고 시험관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인공수정은 과배란을 시켜 난자가 여러 개 나온 상태인 자궁에 채취한 정자를 넣는 방식이었다. 거의 자연임신과 비슷한 건데 수정이 잘 되도록 확률을 높여주는 방식이었다. 시험관은 여러 개 나온 난자를 채취해 말 그대로 시험관에서 수정까지 시킨 후 자궁에 넣는 식이었다. 말은 간단하지만 인공수정이고 시험관이고 후기를 보고 있자니 덜컥 두려워졌다. 과배란을 위해 매일 내가 내 배에 주사를 놓아야 한다니... 인공수정에서 안 되면 그다음 단계는 시험관인데 시험관은 난자채취를 위해 수면마취까지 해야 했고 이후 복수가 2-4kg씩 차서 응급실을 가는 상황도 빈번하게 있는 듯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 파악하고 거실로 나가 승현에게 인공수정과 시험관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그에겐 아이가 생기냐, 안 생기냐가 문제일 뿐이지 인공수정이고 시험관이고 크게 관심 없어 보였다. 두려운 내 마음과는 달리 무덤덤한 그의 표정을 보니 눈물이 차 올랐다. 이 힘겨운 과정은 모두 내 몫이 되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결국 눈물을 못 참고 터뜨렸는데 그제야 놀란 승현이 나에게 다가와 안아주며 말했다.
"무서우면 안 해도 돼요. 난 장작가가 힘든 거 싫어요."
그 나름대론 이러한 상황에 잘 대처하는 말이라 생각했을 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답이었다. 그 과정들이 무섭다고 안 하면 나는 또다시 매달 임신테스트기나 들여다보고 실망하고 할 테지. 정답은 '힘든 결정 해줘서 고맙다.'가 아닐까.
나는 바로 눈물을 닦고 난임병원에 전화를 했다. 생리가 시작되면 2-3일 사이에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했다. 생리가 터졌고 바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만 가면 모든 걸 바로 진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나면 한 달 뒤에야 인공수정 시술을 할 수 있다 했다. 나는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던 것 같다. 가장 아팠던 건 나팔관조영술, 배를 갈가리 찢는 고통이었다.
인공수정 시술을 앞두고 남편도 정자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자검사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몇 가지 관리를 한 후 최상의 컨디션에서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러한 것을 승현에게 설명하는데 승현의 표정에서 못마땅함을 보았다. 나는 지금 병원을 몇 번을 오가며 살 찢는 고통까지 느꼈는데 겨우 정자 채취 하나 하면서 표정이 왜 저렇지. 내가 잘못 보고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서운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예민하고 두려운 상태였으니까. 어쨌든 모든 검사 결과 승현의 정자 수가 조금 모자란 것 외에는 우린 임신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인공수정과 시험관은 정자수가 그리 크게 중요하진 않는 듯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또다시 생리가 터져 병원을 찾았다. 이때부턴 과배란 시키는 작업(?)에 들어가는데 그 작업이란 매일 내 배에 직접 주사를 놓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주사 놓는 교육을 받고 보냉가방에 한가득 주사를 가져왔다. 심란했다. 나는 공포증까진 아니지만 피를 뽑거나 주사를 맞을 때, 또 치과 등에 가면 아예 기구 자체를 보지 않는다. 눈을 질끈 감고 내내 다른 생각을 하며 무서움을 이기는데... 내가 직접 주사기를 들고 내 배에 직각으로 주삿바늘을 내리꽂아야 한다니. 인공수정, 시험관 카페에 들어가 보니 직접 주사 놓는 것이 무서워 남편이 놓아준다는 사람도 많았다. 잠시 승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무리 부부라도 어느 정도 환상은 가지고 살고 싶은데 아침마다 아내의 도톰한 배를 잡고 주사를 놓아야 한다니. 우리 둘 성격상 서로 불편한 일이었다. 다음 날, 시간에 맞춰 주사를 들었다. 결혼 3년 동안 포동 하게 쪄오른 뱃살을 잡고 주삿바늘을 내리꽂았다. 주사를 놓고 5초 있다가 빼라고 했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주사는 꽂을 때보다 뺄 때 더 무섭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할 만했다. 내일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내심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주사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기분도 좀 나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중간 초음파 검사에서 난자 수도 상태도 모두 괜찮다는 결과를 들었다. 이제 인공수정 시술 당일 싱싱하게 잘 관리된 승현의 정자를 채취해 내 몸속에 넣으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시술 며칠 전, 승현이 몸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어떻게 이상하냐고 물으니 열이 나고 코가 맵다 했다. 우리는 이전까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더랬다. 지금까지 안 걸린 거면 앞으로도 안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승현은 그만 코로나19에 감염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