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박사님은 좋은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같이 있을 때 편한 사람'이라고 했다.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다 느끼게 해주며,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 즉 '안전 기지'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김창옥 선생님은 결혼 전에 상대의 맨몸, 즉 '언어와 돈'을 봐야 한다고 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인품과 성품을, 돈은 그 사람의 출발점을 아는 것이라고.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돈을 얼마나 버는지, 빚은 얼마나 있는지,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지 전문가들은 각자의 견해를 밝히고, 그에 따른 이상적인 조건들이 생겨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자상하고, 책임감 있고, 가정적이고, 성실하고, 대화 잘 통하고, 주사 없고, 폭력성 없고, 낭비벽 없는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과 결혼하면 좋은 거 누가 모르겠나.
하지만 나 또한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결혼 상대일리 만무하고, 경험상 이런 완벽한 사람이 존재할 확률은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이상형인 남자가 내 번호를 물어볼 확률만큼이나 희박하다. 만난다 하더라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 본인처럼 완벽한 사람을 좋아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이상형을 찾기보단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을 가지지 않은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폭력성이든, 거짓말이든, 위생이든, 게으름이든 위에 나열한 수많은 장점을 다 가지고 있어도 내가 참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이혼할 수도 있는 게 결혼생활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삶의 일부이고, 결혼은 삶 그 자체이다. 연애할 땐 안 맞는 것들을 대충 피하며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결혼은 아니다. 매일같이 불편한 감정을 마주해야 하므로 작은 것들은 넘길 수 있어도 큼지막한 것들은 결국 소화불량을 일으켜 안에서 천불이 나게 하거나 내 속에 잠들어있던 악마를 깨울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소화불량을 일으켰던 것에 관해서만 얘기하려고 한다. 아무리 애써봐도 서로를 견딜 수 없던 것, 우리가 이혼할 수밖에 없도록 기여했던 것, 서로가 너무 달라서 혹은 부족해서 서로를 괴롭게 했던 것들 말이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기분이 상했을 때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게 된다. 냉소적이 된다든지, 툴툴 댄다든지, 예쁘지 않은 말이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허용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면 그리고 반복된다면, 언제 괴물로 변할지 모르는 헐크와 사는 기분일 거다. 기분 좋은 여행은 사소한 다툼으로 엉망이 될 수도 있고, 순간의 욱함을 참지 못해 기념일이 잊지 못할 악몽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기분 상하는 수많은 상황들이 생긴다. 그때마다 본인의 감정을 배우자에게 풀어내거나 조절하지 못하고 심한 말을 내뱉는다면, 더 나아가 폭력성 짙은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둘 사이에 신뢰는 쌓일 수가 없다. 연차가 쌓일수록 신뢰도 같이 쌓여야 역경이 와도 서로를 의지하며 극복할 힘이 생기는데, 신뢰가 없으면 위기의 순간마다 둘 사이는 흔들리고 그 결혼생활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
특히나 화났을 때 튀어나오는 공격적인 행동이나 폭언, 분노의 방출은 본인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무섭다.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개선될까 말까 한데, 보통은 '점차 나아지겠지' 하며 방치하기 때문에 그 문제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 결국 화를 부른다.
기분이 상했을 때와 아닐 때의 온도차가 크지 않은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힘든 순간이나 행복한 순간이나 나를 똑같이 존중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런 사람과 함께해야 신뢰가 쌓이고, 삶의 고비를 함께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게임 스트리머이자 유튜버인 고등학교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나와 성격도 비슷하고 MBTI도 똑같아서 얘기하면 참 재밌고 대화도 잘 통한다. 이 친구는 내가 대학원을 그만뒀을 때나 새로운 것을 도전할 때, 기운을 북돋아 주고 늘 잘했다고 해줬던 친구다. 나 또한 이 친구가 인터넷방송 시작을 고민할 때 무조건 해보라고 퇴사를 부추겼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친구는 누군가의 연봉을 한두 달에 벌기도 한다. 다소 위험부담이 있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좋아하고 재밌는 일이면 일단 시도하고 보는 삶의 방식이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친구와 내 삶도 그러한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불안해했고, 나를 닦달했다. 다들 하기 싫은 것도 참으며 사는데 그게 싫다고 대학원을 그만둔 나를 철부지 같다 여겼고, 이후로도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삶을 부정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부딪힐 일이 정말 많아진다.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은 배우자의 불행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대학원을 그만둔 건 나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그로 인해 남편은 불행해졌다. 외벌이에 대한 부담감과 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책임감 없는 선택을 한 배우자에 대한 배신감. 이 모든 게 남편을 힘들게 했을 거다. 대학원을 그만두는 순간 너무 행복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남편의 눈치를 봐야 했다. 계속 남편에게 무언가 증명해야 했고, 나의 행보는 부부싸움의 원인이 됐다.
나 또한 남편의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못했던 거 같다. 돈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퇴근 후 집에서 게임만 하는 남편을 답답해했고, 재테크 공부라도 해보라며 잔소리했다. 주말에 쉬고 싶어 하는 남편을 데리고 나가 카페에서 책을 읽게 했고, 그 과정에서 남편도 내가 자기를 못마땅해한다고 느꼈을 거 같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불편해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 무엇보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눠보고 결혼을 결정해야 한다. 어떤 삶을 사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재미인지 안정감인지, 경제적 자유인지, 명예인지 등 삶의 방향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눠봐야 서로의 삶을 응원하면서 평생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회사에선 천사표인데 가족한테는 온갖 짜증과 막말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회사에서의 모습이 아무리 멋지다 해도 결혼하면 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혼하면 아무리 설레고 사랑하던 사람도 결국엔 가족이 되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하던 말버릇, 태도는 고스란히 나를 향하게 된다. 연애할 때는 보통 다 잘해주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도 너무 당연하다. 그래서 가족을 어떻게 대하는지 봐야 한다. 가장 가깝고 편한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사람이 배우자도 소중히 대할 거다.
또한 결혼생활을 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감내하는 것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인데, 이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많은 문제가 생겨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평소에 가족에게 잘하고, 고마워하기 마련이다. 물론 간혹가다 가족과 너무 사이가 좋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가족에게 못하는 사람보단 잘하는 사람이 좋은 배우자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모든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사소하게 부딪히는 것들이 참 많은데 이때 문제의 원인을 배우자에게 찾으면 모든 게 싸움의 불씨가 된다.
남편은 자기를 화나게 한 내 탓이라고 했고, 나는 화가 많은 남편 탓이라고 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당시 나는 사소한 행동에 화를 내는 남편 때문에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내가 남편의 화를 돋운 것도 맞고, 사소하다는 건 내 입장일 뿐 남편에겐 절대 사소하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은 거였다. 그렇다고 남편이 화나서 한 행동을 합리화하고 싶진 않지만, 늘 갈등을 마주함에 있어 나를 먼저 돌아봐야만 하는 게 결혼생활인 것 같다. 배우자를 탓하기 이전에 내가 무엇을 고칠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충격적인 건 나는 평소에 남 탓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는 거다. 하지만 결혼생활에 있어서는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탓하게 된다. 나는 결백하기 때문이다. 근데 그 결백이라 함은 어디까지 내 입장, 내 생각이고 배우자의 입장은 늘 첨예하게 다르다. 남 탓을 잘하지 않는 나도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평소 남 탓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결혼생활에서의 모습은 더욱 심화될 거라 생각한다.
평소 누군가에 대해 얘기할 때, 혹은 갈등에 관해 얘기할 때 무조건 상대방 욕만 하진 않는지, 자신의 잘못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결혼생활에서 생기는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긍정+낙천 남편은 부정+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안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라고 했고, 남편은 안될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대비했다. 나는 "괜찮아, 잘될 거야! 일단 해보는 거지!"를 외쳤고, 남편은 "안되면 어쩔 건데?"를 외쳤다. 이 또한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다툼으로 번지기 십상이었다. 뭔가를 시작하는 나에게 찬물을 뿌리기 일쑤였고, 그런 남편의 불안을 잠재우는 건 늘 쉽지 않았다.
나는 단점도 많지만, 장점도 많은 사람인데 남편은 나의 단점에 포커스를 맞췄고, 남편과 있으면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깊은 얘기를 나누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꿈과 희망을 얘기하면 남편은 허황된 얘기를 한다는 듯 표정이 굳곤 했다. 물론 그 배경엔 남편이 짊어진 가장의 무게가 있었을 거란 것도 이해하는 바이지만 걱정과 불안이 없는 나와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남편은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를 주는 관계는 아니었다. 나의 지나친 긍정은 남편에게 더 큰 걱정과 불안을 안겨줬다.
무조건 긍정적인 사람이 좋다는 건 아니다. 현실적이고 비판적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대비하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라면 그냥 같이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는 게 더 나은 거 같다. 부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설득하고 불안을 잠재우느라 계속 에너지를 뺏기고, 그러다 보니 실행을 위한 에너지가 고갈돼서 점점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버리더라.
마지막으로 이 부분은 우리가 여러 가지 안 맞고 힘든 것들을 5년이나 견디며 살 수 있게 해 준 이유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화코드가 엄청 잘 맞진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개그코드는 정말이지 잘 맞았다. 그냥 남편이 뭘 해도 꺄르르. 내가 뭘 하든 남편도 꺄르르. 그러면서 화가 풀리기도 하고 늘 우리만의 밈, 우리만의 유행어가 넘쳤다.
인생에서 유머는 너무 중요하고, 결혼생활에서도 웃음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삶의 비극을 한순간에 희극으로 바꿔줄 수 있는 것이 웃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팀이 되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유머 코드가 잘 맞는 사람과 함께하는 건 크나큰 강점이 된다.
*요약*
1. 기분이 상했을 때와 아닐 때의 태도가 같은 사람
2. 내 삶의 방식을 좋아해 주는 사람 (삶의 목표와 방향이 비슷한 사람)
3. 가족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
4. 남 탓과 비난의 습관을 가지지 않은 사람
5. 긍정적인 사람
6. 웃음 코드가 잘 맞는 사람
내 경우는 1~5번을 충족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재혼한다 해도 다시 또 이혼할 가능성이 높을 거 같고, 6번을 충족하지 않는 사람과는 이혼하진 않더라도 행복함이 반감될 거라 생각한다. 이 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많지만 이혼 사유가 될 만큼은 아니라서 언급하지 않을 뿐이다.
위의 6가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과 결혼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다. 인식하고 노력하면 고쳐질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어떤 점에서 부족하더라도 다른 장점으로 커버될 수도 있다. 위의 6가지는 나의 예시일 뿐, 중요한 것은 본인이 참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아는 것이다.
이런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나부터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그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니까. 그리고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알아보려는 노력만큼이나 상대방이 참을 수 없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며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