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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니 가장 후회되는 것

나는 정말 '좋은 사람' 일까?

by 온호류 Feb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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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뒤풀이에서 술이 잔뜩 취한 친구가 말했다.


"니가 뭘 생각하든, 다 틀려. 그러니까 싸물어."

친구는 싸물라고 하면서 고기쌈을 싸듯 입 앞에서 자기 손을 오므렸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결혼을 일찍 해서 4년이나 결혼 선배였지만 평소 결혼생활 얘기는 거의 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취한 모습을 본 것도, 무언가를 이토록 세게 말한 적도 없던 친구라 의외이면서도 그 모습이 재밌어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무려 5번의 환승을 거쳐 우유니에 도착해야 하는 남미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인지, 돌아가서 취중짐싸기를 해야 하는 걱정 때문인지, 아니면 많이 마셔버린 술 때문인지 뒤풀이의 추억은 뇌리에 깊이 자리잡지 못하고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희미해졌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이혼절차를 마치고 부모님 집에 와있을 때였다. 혼자 카페에 앉아있는데, 문득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니가 뭘 생각하든, 다 틀려. 그러니까 싸물어."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혼을 하고 가장 후회되는 5가지가 있는데 그중 2가지가 저 말 안에 들어있었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우린 이혼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인데, 이미 겪어본 친구가 진심으로 얘기해 주고 있음에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거였다.



신난 싸물어 친구 (우)신난 싸물어 친구 (우)


결혼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후회하는 게 뭐냐 물어보면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이라 하겠다.


결혼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무수히 틀려왔다. 하지만 당시엔 내 생각이, 내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전) 남편을 선택한 것, 결혼을 서두른 것, 이혼에 대해 너무 오래 고민한 것 등 표면적인 것부터 남편과 갈등에 있어서 남편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 것,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 것 등 돌이켜보면 나의 생각과 행동들은 잘못된 것투성이다.


내가 옳다는 강한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문제는 나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데서 오는 듯했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왜 날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을까? 좋은 사람의 정의는 뭘까?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왜 나의 결혼생활을 힘들게 했을까?




나는 잘 웃고, 긍정적이고, 무례하지 않은 모두에게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 의리도 있고, 내 사람을 잘 챙기고, 베푸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 꼬인 것도 없고, 화도 별로 없어서 웬만한 거엔 화도 잘 안 낸다. 화가 나도 차분히 얘기하고, 나쁜 일은 빨리 잊어서 대체로 늘 행복한 편이다. 이 정도면 좋은 사람 아닌가?


글을 읽는 분들이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데 동의할지 모르겠다.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좋은 사람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그리고 그 정의가 다 다르다는 건 중요한 포인트다.


결혼 전의 나는 오만하게도 나의 기준이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생각했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실제로 좋은 사람인 것은 다른 얘기인데, 마치 'think'가 'be'인 것처럼 착각했다.

이런 생각은 왜 문제가 될까?


결혼은 둘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거나 다름없다. 왕과 왕비가 있고 둘이 의논하며 나라의 법을 제정해 나가는 거다. 둘의 의견이 같을 땐 문제가 없다. 그런데 둘의 의견이 다를 때 왕비는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는 합리적이고 올바른 생각을 하고, 좋은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건 없다. 그 정의와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런데 스스로를 옳은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기의 기준이 옳고,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왕이 반대 의견을 내면 얘기는 들어 보지만 객관적으로 자기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왕의 말이 틀렸다며, 나중에 백성들한테 물어보면 다 내 말이 맞다 할 거니 자기 말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 현재 이 나라에 둘밖에 없고 1:1인 상황이지만 왕비는 계속 자기가 맞다 하고, 왕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이건 끝나지 않는 싸움의 시작이 된다.




나는 좋은 사람이, 좋은 왕비가 아니었다. 남편의 말이 얼토당토않다 생각해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봐 그게 말이 되나"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설령 지나가는 100명이 모두 내 말이 맞다고 해도, 남편의 기분만 상하게 할 뿐이다. 남편과 둘이 만든 나라에 살기로 했으면 그런 태도를 취하면 안 됐다. 내가 함께 사는 건 지나가는 100명이 아니라 내 남편이니 제삼자의 의견 따윈 들을 필요도 없는 거였다. 그냥 남편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온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니가 뭘 생각하든, 다 틀려. 그러니까 싸물어."


친구의 말처럼, 배우자와 대화할 때는 그 말이 아무리 황당하게 들려도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라는 마음으로 입은 꾹 닫고 귀를 열어야 한다. 이해 안 가는 말일수록 더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상대방의 얘기가 들린다.

'내 말이 맞아'라는 생각으로 대화를 하면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반박할 거리를 찾게 되고 다음 할 말을 생각하느라 상대방의 얘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방은 내가 자기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아챌 수 있고, 그로 인해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결혼생활에서 생기는 모든 갈등은 결국 대화로 풀어내야 하기에, 부부에게 대화란 너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해서 같이 나라를 세우기 '좋은 사람'은 잘난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너무 강하지 않아서 언제든 자기 말이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며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고, "듣고 보니 네 말도 맞네!"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평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렇다' 할 것이고, 누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생활에서 자존감이 너무 높은 사람은 나처럼 '나쁜 사람'이 되기 쉽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보통 자신감도 넘치고, 자신의 언행에 확신도 넘친다. 그리고 그런 확신은 '내가 맞다'라는 오만함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나의 가치관을 강요하고, 그 가치관에 반대 의견을 내는 배우자를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평판이 좋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을지라도 최악의 배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헤어지지 않는 결혼이 하고 싶다면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배우자가 아니라고 하면, 언제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고 인정할 줄 아는 마음가짐.

배우자가 아무리 이해되지 않아도, '이해 못 하는 내가 문제일 수도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열린 마음.


이 두 가지 마음가짐만 갖추면 누구나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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