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를 없앨 것
법적으로 부부가 되고 몇 개월 뒤 처음 이혼을 떠올렸던 순간부터, 매일은 아니었어도 마음 한구석엔 계속 '이혼'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던 거 같다.
연애기간이 짧아서였는지 결혼 후 연애할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전)남편의 몇몇 모습들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당시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이란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었다. 더 심해지고 심화되긴 쉬워도 개선되긴 어려운 거였다.
평소엔 그렇게 사랑이 넘치는 그인데 가끔씩 화가 나면 튀어나오는 행동에 꽤나 자주 '이게 맞나...?'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엔 '사랑하는 사람이니 어떻게든 같이 잘해봐야겠다'는 생각 반, '이건 아닌데..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 반, 계속 갈팡질팡했던 거 같다.
연애를 할 땐 아니다 싶은 부분이 보이면 바로 헤어질 수 있지만 알다시피 결혼은 그게 어렵다. 아무리 이혼이 쉬워졌다 한들 부모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잘 살겠다고 지인들과 친척들 앞에서 굳게 한 약속을 홀랑 뒤집어 버리는 건 꽤나 부끄러운 일이다. 내 선택이 틀렸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 더해 아직 결혼식과 신혼여행의 여운이 다 가시지도 않은 채 그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한다는 건 들어간 비용과 시간을 다 떠나서도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했다.
어찌 보면 매몰비용의 오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투자한 돈이 아까워 전망이 좋은 않은 사업을 접지 못하고 비효율적인 선택을 지속하듯, 이 결혼생활이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중단하지 못하고 계속 끌고 가는 상황이 되는 거다. 시간이 좀 지나면 선택이 쉬워질까? 아니다. 결혼식의 여운은 옅어졌을지언정 함께한 세월이 늘어난 만큼 잘라내기는 더 어려워진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남편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잠시 엎어뒀던 이혼이라는 카드를 만지작 거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삶의 근간이 흔들린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건 '집안'은 삶의 근간이란 뜻이다. 이혼을 하면 여태껏 둘이 쌓아온 '집안'이 한순간에 무너질 테고 말장난을 좀 하자면 밟고 서있는 '지반'이 흔들린다는 소리다.
큰 싸움이 있을 때마다 지반이 주기적으로 흔들리는 데 무언가에 집중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반복되는 남편과의 불화, 계속되는 내적 고민은 나의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감정적으로 늘 지쳐있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욕심은 크고 실력은 부족하니 온 마음을 다해도 잘 될까 말까 한데, 흔들리는 지반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집안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고,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서도 멋진 성과를 냈겠지만 나는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한 아마추어였다. 삶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결정을 미루며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것은 마치 지진 피해가 계속되는 지역에 살면서 이사를 미루는 일이자,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기생충을 내 안에서 사육하는 격이라는 걸 당시엔 알지 못했다.
선택지를 없애지 않고 5년간 계속 고민했던 것. 이게 앞서 언급했던 '이혼 후 가장 후회되는 5가지' 중 4번째로 후회되는 일이다.
그 선택이 이혼이든, 결혼을 지속하는 것이든 확실히 어느 것 하나를 결정을 하고 나아갔어야 했다. 선택지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안다고 하면 행동에 확신이 생기고 그 미래에 빨리 도달하는 쪽으로 에너지를 집중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 전공선택을 고민하고 있을 때 미래의 내 직업을 알 수 있다면, 고민의 여지없이 진로를 선택하고 그쪽으로 커리어를 발전해 나갈 거다. 미래에 대한 '앎'이 있으면 행동은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 '앎'이란 결국 스스로의 강한 확신이다.
내가 만약 초기에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고 잘 살 거야'라고 굳게 확신하며 '이혼'이란 카드를 찢어버렸다면 우린 정말 잘 살았을 수도 있다. 좀 더 일찍 남편과 문제 해결에 나섰을 거고, 부부상담도 더 일찍 받았을 거다. 당시 대학원공부를 하느라 바빠서 선택을 미뤘던 것도 있지만 어떤 것 하나를 선택하기에 내 확신이 부족했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확신이란 것은 그냥 내가 결정하기 나름인 거였다.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무엇을 확신할지 스스로 선택하면 그만인 거였다.
나는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5년간 이혼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렸기 때문에 결국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게 된 거다. 이 얼마나 시간 아까운 짓인가. 이혼을 할 거였음 진작 1년 차에 했어야 했고, 5년이나 끌 거였음 애초에 카드는 찢어버렸어야 했다. 괜히 카드를 지니고 있던 탓에 내 삶은 근간은 계속 흔들려왔다.
이혼이든 연인과의 헤어짐이든, 갈팡질팡하고 있다면 너무 오랜 시간 선택을 미루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순간이 반복된다면 단호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애석한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중에 남는 것은 좀 더 일찍 결단을 내리지 못한 나에 대한 원망일 수 있다. 중대한 결정인 만큼 내가 실수했던 것처럼 시간과 상황에 결정을 맡기지 말고,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단호한 선택을 내리시길 바란다. 어차피 지금 선택하나 나중에 선택하나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똑같이 남는다. 대신 빠른 선택은 또 다른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는 '시간'을 확보하게 해 준다.
그러니 고민이 계속된다면 최대한 빠르게 선택지를 없애버림으로써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집중하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거라고,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