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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by 온호류 Mar 21. 2025



'좋은 대화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지난 글에 이어 계속 얘기해 보려 한다.


지난 글에선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로 잘 해결하기 위한 팁 2가지를 얘기했다.

1. 먼저 기분이 상한 사람의 마음부터 풀어주기.

2.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내 생각과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 입장에서 온 마음을 다해 경청하기.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대화가 원만하게 흘러갈 수 있지만, 자칫 좋은 대화를 극으로 치닫게 할 수 있는 두 가지 빌런이 존재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대화가 늘 안 좋게 끝난 건 이 두 가지 때문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말싸움에서 자주 등장했던 말들이 있다. 


"너는 왜 그랬어?"

"너도 못하면서 왜 나한테만 강요해"

"너부터 잘해"

"됐어, 너랑 무슨 얘기를 해"

"그만하자"

"어차피 또 그럴 거잖아"


이 밖에도 비슷한 말들이 자주 오가곤 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풀지 못한 안 좋은 감정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둘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대화가 오갔다. 당시엔 그냥 일상이라 자각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이건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대화가 아닌 거 같다.

우리가 주고받은 말들에 콕콕 박혀있는 두 가지가 바로 '비난과 무시'이다. 


내 행동에 화가 나거나 서운한 사람한테 "너도 그러잖아"라고 비난을 하는 순간 더 이상의 대화는 없는 거였다. 물론 (전) 남편의 내로남불에 지쳐서, 어이가 없어서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말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남편과 대화를 거부하고 있던 거나 다름없다.


남편은 비난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결혼 초 나에게 처음 심한 욕을 했던 날,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 하니 욕먹을 짓을 한 내 잘못이라고 했다. 화가 나면 마음에 길이길이 상처가 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남편이 나에게 말 좀 예쁘게 하라고 하니 "너는 나한테 예쁘게 말하니?"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서로서로 마음에 쌓인 게 많고, 관계가 어긋나 있으면 비난의 말을 안 하기가 참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7화 첫 부부싸움이 결혼의 운명을 바꾼다'에서 강조했듯 관계가 오염되지 않게 처음부터 잘 관리하는 게 너무나도 중요하다. 1년간 부부상담을 받으면서 '비난의 말 안 하기' 연습을 했지만 솔직히 우리 부부는 실패했다. 둘 다 마음속에 곪아버린 감정이 가득했고, 관계가 이미 극으로 치닫아 버린 상태라 관성처럼 늘 하던 대로 싸우게 됐다. 


남편이 자기를 화나게 하는 내 탓이라고 하면, 나는 화가 많은 남편 탓이라고 받아 칠 수밖에 없었다. 

비난은 비난을 부를 뿐, 비난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건 내가 5년간의 수많은 다툼 끝에 깨달은 진리이기도 하다. 비난은 비난을 부르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아무리 화가 나도, 비난의 말이 아닌 다른 말을 찾아야 한다.

"화난다고 막말하는 것좀 그만할 수 없어?" 이렇게 상대방의 행동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말을 하는 대신 어떻게든 돌려서 얘기할 수 있는 말을 찾아야 한다. 주어를 '나'로 바꾸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너한테 그런 얘기 들으면 너무 속상하고 다 포기하고 싶어져. 내 배우자한테 그런 상처되는 말 이제 그만 듣고 싶어."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단 상대방의 행동으로 인해 내가 느끼는 것에 대해서만 얘기해야 한다.




비난과 함께 따라다니는 게 무시이다. 무시는 위에서 언급했던 여러 예시들처럼 말로 하는 것도 있지만, 단번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시받는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건 경멸의 눈빛, 한숨, 코웃음 같은 '비언어'이다. 



출처: 유튜브 채널 <The clip>


영화 '기생충' 후반부 장면에서 고 이선균배우가 냄새난다고 코를 막으며 찡그리는 그 경멸의 표정에 송강호배우가 이성을 잃은 것만 봐도 그렇고, 아내의 코웃음은 단번에 남편의 자존심을 지하 저 끝까지 내리꽂는다는 말도 있다. 부부상담을 받을 때 상담선생님이 했던 말 중 뇌리에 깊게 박혔던 말이 있다.


"비언어는 빛의 속도보다 빨라요"


남편의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나의 표정이었다는 걸 부부상담을 하면서 깨달았다. 남편은 '무시'라는 감정에 꽤나 취약한 사람이었고, 나는 싸울 때 언성을 높이거나 심한 말을 하진 않지만 나도 모르게 표정이 썩는 사람이었다. 은연중에 한숨을 쉬거나 코웃음 치는 등의 행동도 했던 거 같다. 남편에겐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도화선이 되어 분노가 끓어올랐을 거다.   


비난과 무시(경멸)의 공통점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부간 태도에서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존중'인데, 이 본질을 흐리는 게 바로 비난과 무시이다. 평소 상대방에게 나의 불만이나 감정을 전달할 때 이 두 가지만 피하려 애쓴다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도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 거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블로그 글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것에 대해 맘에 쏙 드는 표현을 하신 적이 있다.

'고유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말없이도 변화를 종용하는 이와의 만남'

 - 이지영 작가님 블로그 원문 https://blog.naver.com/mynameisyouth/223590511507


지적하고, 비난하고, 말로써 행동변화를 촉구하지 않아도 내가 더 나은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드는 사람이 있다. 보통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경우였다. 나에게 운동하라 말하는 대신 운동으로 멋있는 몸을 만들어 나의 처진 살이 부끄럽게 만들던 사람. 열심히 살라고 하는 대신, 누구보다 바쁘게 살면서 나한테 연락할 시간도 없어 나도 덩달아 바쁘게 살아야 하게끔 만들던 사람. 너무 좋은 사람이라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드는 사람.


사실 진짜 변화는 누군가의 말이 아닌 자기의 내면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가 기분이 상해서 쏟아붓는 말들은 오히려 청개구리 심보를 자극해 역효과를 내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비난과 무시의 말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 한지 깨닫게 된다. 


배우자에게 불만이 생겼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꼭 말을 해야 한다면 가장 예쁘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말로 골라서 '너'가 아닌 '나'로 시작하는 말로 얘기해 보자. 그런 노력이 더해진다면 아무리 갈등이 생긴다 해도 부부싸움이 아닌 좋은 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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