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년 차, 연애할 땐 보지 못했던 (전)남편의 과격한 모습과 점점 도를 넘어가는 우리의 부부싸움을 보며 나는 남편에게 부부상담을 받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남편은 내가 문제이니 나 혼자 상담을 받으라고 했다.
당시 남편은 마치 무기라도 되는 양 이혼하자는 말을 상습적으로 내뱉곤 했다. 나 같은 년이랑 못 살겠다며.
이혼하자는 얘기만 하면 내가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졌으니 남편 입장에선 무기가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욕을 하거나 부부싸움 중 나를 밀치는 폭력적인 남편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고 실망하는 중이었다. 결혼식 날 아침에도, 신혼여행을 가서도 '지금이라도 이혼해야 하나?' 속으로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인데 노력은 해보고 끝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이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남편이 이혼 얘기를 꺼내면 내가 잘못했다며 남편의 화를 풀어주기에 급급했다. 뭘 잘못했는지, 남편은 왜 화가 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사실상 결혼 2년 차까지는 대학원 일이 너무 바빠 대화할 시간도 부족했고, 시간이 없으니 문제를 덮어놓았던 거 같다. 그 시절 남편은 내가 사과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사과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남편의 화가 풀리길 기다리며 일주일 넘게 말을 안 하며 지낼 때도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고 한 것이 어느새 3년이 흘렀다. 지나고 보니 방치한 채 시간만 보냈을 뿐 큰 노력을 한 건 아니었다. 둘 사이의 정과 연민은 더욱 두터워졌지만 해결된 건 없었다.
결혼 3년 차에 대학원을 그만두고 대전으로 내려와 여유시간이 생기니 우린 더욱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젠 나도 더 이상 져줄 수만은 없었다. 아니, 져주기 싫었다.
대전으로 이사 후 몇 달간 지겹도록 싸웠고, 한 번은 대판 싸운 뒤 처음으로 일주일 넘게 별거를 한 적이 있었다. 단 한 번도 내가 먼저 이혼하자는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는데, 긴 별거 끝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기라도 한 걸까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부부상담을 받아보자고. 그렇게 우리의 상담은 대전에서 시작되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신나서 여기저기 꼼꼼히 검토해 보고, 전화를 해가며 알아봤다. 부부상담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유능하고 좋은 상담사를 만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져 형식적인 상담을 해줄 분이 아닌 진심으로 우리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해결 방법을 모색해 줄 상담사를 고르고 싶었다.
알아보니 상담료가 만만치 않았다. 1시간에 5~20만 원 하는 비용이 꽤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정부 지원 사업을 알아봤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우리의 첫 상담은 2021년 12월 18일에 정부 지원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얘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비용으로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함이다.)
상담을 받으며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푼 채로 맞은 크리스마스이브. 다음날인 12월 25일에 상담이 잡혀있었다. 오랜만에 와인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평소처럼 별거 아닌 걸로 시작해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술기운에 화를 주체할 수 없던 남편은 와인병을 던졌다. 그리고 이웃의 신고로 처음 경찰이 집으로 찾아왔다.
부푼 기대만큼이나 아팠던 기억….
너무 무서워서 녹음 버튼을 눌러놨던 그날의 음성을 들으면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다. 그 길로 집을 나와 이혼을 결심했어야 했는데. 나는 모질이같이 괜찮다며 경찰을 돌려보내곤 다음날 남편과 함께 상담을 하러 갔다.
'정'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몇 걸음만 떨어져 바라봐도 쉽게 보이는 것을 '정'이라는 접착제로 끈끈하게 붙여놓은 부부 사이에는 볼 수가 없나 보다. 아니, 달라질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볼 생각조차 안 한 거 같다.
그렇게 계속된 상담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21번 진행됐고, 상담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못남을 깨닫고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는 결혼 6년 차에 결국 이혼했지만, 상담 과정이 헛되지만은 않았다. 상담을 통해 서로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고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후회 없이 이혼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까지 했는데 여전히 힘들고, 변하지 않는 거면 이혼하는 게 서로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고 미련 없이 결정 내릴 수 있던 것은 1년이 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1년 차에 부부상담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거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 대한 미움, 불신, 상처, 악감정이 너무 깊게 자리 잡은 뒤였기 때문에 상담의 효과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거 같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기 전에 일찍 상담을 받았더라면 이혼하지 않고 잘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러한 아쉬움이 이번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이다.
부부 갈등을 겪고 있는 분들이 하루라도 빨리 상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부부상담을 고려해 봤으면 한다. 상담이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는 건 아니지만 좋은 상담과 그에 따른 노력이 받쳐준다면 분명 많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상담이 진행되고 무엇을 배우며 어떠한 연습을 하게 되는지 상담이 필요한 분들께 알려드림으로써 나처럼 관계를 그저 방치하고 시간만 보내기보단 부부가 무언가 함께 시도해 보며 결혼 생활을 이어갔으면 한다. 또한 상담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여정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좀 더 신속하고 현명한 이혼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작에 앞서 당부하고 싶은 것은 둘이 함께 부단히 노력할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부부상담은 돈+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상담받는다고 그냥 좋아지는 게 아니다. 상담받은 후 다음 상담까지 둘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차차 알려드릴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다.
그럼, 본격적으로 우리의 첫 번째 상담일인 2021년 12월 18일의 상담 일지를 펼쳐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