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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Sep 06. 2023

너라는 세계

고슴도치 엄마눈으로 보는

아이는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다른 빈 강의실에서 혼자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놀기도 한다.

보통은 아이가 그 당시 관심이 있었던 부분에 대해 본인만의 생각을 추상화처럼 알 수 없는 그림으로 남겨두곤 했다.

어떤 날엔 빅뱅에 꽂혀서 온 칠판 가득 빨간색으로 터지는 우주를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 날엔 게임의 화면이 한가득 그려져있기도 했다.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저녁시간과 남들 다 놀러 다니는 주말에 일하는 엄마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 가시처럼 돋아나 있다.

피곤한 날이면 더 날이 선 가시로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한다.


이 날도 여전히 그림을 지웠다 그렸다 하더니 마지막에 작품(?)을 남겨놓고 홀연히 교실을 나와 아빠폰을 찾았다. 허락받은 시간 내의 폰 게임을 하기 위해서.

아이가 나온 교실을 정리하러 들어간 우리는 칠판에 놓인 작품을 보고  “우리 아들 천재 아냐?!"

(지극히! 주관적관점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입니다)

이런 무분별한 칭찬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하는데

귀여운 사랑스러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무심결에 천재라는   튀어나왔다.


아이의 장래희망중에 만화가가 있다. 그래서 꾸준히 짧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의 캐릭터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A4지에 칸을 나누어 한 장씩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줄 때마다 한 포인트를 찾아 재밌다고 소감을 말해주곤 다.


화이트보드에는 아이의 만화 속에서 보던 친근한 그 캐릭터들이  교실의 물건들과 콜라보가 되어 살아 있었다.(사실 아직은  캐릭터가 잘 구별이 안 되는 수준이다^^;)


빔프로젝터의 리모컨은 서핑보드가 되어있었고,

여학생이 떨어뜨리고 간 핑크핀 집게는 바닷속 문어가 되었다.

지우개는 아이스크림, 화이트보드  클리너는 침대, 학생들이 쓰는 화이트는 였던 것이다.

작은 뚜껑에 갇힌 캐릭터와  또 다른 종류의 보드클리너가 분한 시상대위에 올라간 캐릭터의 웃음도 보인다.

빨강 보드마카는 병원에서 측정했던 키와 몸무게를 재는 기구로 변신하여 캐릭터의 키를 측정한다.


얼마 전 아이가 열이 나서 코로나와 독감 검사하러 소아과다. 진료 보기 전에  잰 키가  133cm였던 것을 기억하고서 저렇게 적어둔 것 모양이.

그냥 흘러 보내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이렇듯  아이가 그려놓는 그림은 늘 아이의 세상을  조금 엿보게 한다. 그래서 볼 때마다 설레고 감탄하게 되는 듯하다.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아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김소영 에세이 _어린이라는 세계 중에서



엄마가 바빠 잘 놀아주지 못해도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아이는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엄마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아빠의 온기가, 할머니의 보살핌과 다른 가족들의 사랑이 닿아있음을 다시 한번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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