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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Aug 16. 2023

방탈출을 하다.

셋이 모이면 못할 게 없다.

" 오늘 방탈출하러 가면 안 돼요?"


저녁 먹는 내내 아이가 아빠에게 조른다.

아이아빠는 8월 초에 갔다 왔기 때문에 한 달 뒤에 가자고 하고, 아이는 오늘 당장 가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티브이에서 암호를 풀어가며 방을 탈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대학가에 방탈출카페가 여기저기 생겼다.

집에서 가까운 부산대 근처에도 2개의 방탈출카페가 있다.

8월 초 휴가를 맞아 뜨거운 태양을 피해  우리 셋이서 처음으로 방탈출 카페를 갔었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절대반지의 비밀>이라는 테마를 선택했다. 공포도 제로에 난이도 낮은 테마이다. 무전기의 사용방법과 3번의 힌트를 쓸 수 있다는 것과 주의사항을 다 들은 후 휴대폰을 포함한 소지품을 모두 캐비닛에 넣었다.

휴대폰 검색과 방안의 비밀 및 내용유출은 금지였다.

안내하시는 분의 손을 잡고 한 줄로 서서 눈을 감고 긴 복도를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이제 눈뜨고 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각자 모든 물건과 이상한 조합의 단어들을 스캔하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벽면에 붙은 그리스 문자는 분명 오메가, 시그마, 델타 이런 건데  해석이 되지 않아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알 수가 없었다.

1시간 내에 방탈출을 해야 하는데 제한된 시간의  반이 지나도, 하나의 열쇠도 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힌트를 사용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밖에서 무전기로 힌트를 말해주는 과정에서  벽면에 적힌 그리스문자를 [호빗어]라고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오~ 뭔가 해리포터 스러워!


그날은 나의 촉이 좋았다. 2개의 자물쇠에 대한 비밀번호를 다 알아내자 남편도 아이도 "엄마~ 멋져~"를 남발했다.

그렇게 첫 번째 방을 통과 후 두 번째 방에서는 아이의 관찰로  힌트를 찾아 비밀번호를 알아내기도 했다.

"우와~엄마아빠는 그거 못 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눈여겨봤어? 멋져~!"

그렇게 우리는 서로  멋쟁이로 만들며 그 작은 방을 탈출하고자 계속 이리저리 고민하고 부딪혔다.

그러나 하나의 서랍을 남겨두고 결국 시간이 지나 반지가 담긴 상자를 찾지 못했다.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렇게 너무 아쉬워하며 방탈출 카페를 나섰던 것이다.




그 아쉬움으로 며칠째 방탈출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엄마아빠가 함께 있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조른다.

아이는 꼭 엄마와 아빠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못 이기는 척 아이아빠가 "그럼 네 용돈으로 입장료를 계산하면 가겠다"라고 한다. 입장료가 어른 2명에 아이 1명인데 거의 5만원이 넘는다. 이것저것 할인받아도 4만원대.


아이가 한참을 고민한다. 친구집에서 본 닌텐도가 너무 갖고 싶어서 가격을 알아낸 후 열심히 용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입장료를 다 내어버리면 닌텐도가 또 저 멀리 도망가니 자기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한 모양이었다.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가더니 나름 진정한 아이가 딜을 한다.

" 그럼 반만 내주세요. 내가 다 내기엔 좀  비싼 것 같아요"

대신 아빠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다.

아이아빠가 흔쾌히 오케이 한 다음 다 같이 방탈출 카페로 향했다.


카운터에 계신 분이 인사하며 얼마 전에 오시지않았나며 웃으신다. 10대, 40대, 50대의 흔치 않은 연령대 조합의 가족손님이라 기억하시는 모양이다.

지난번과 같은 <절대반지의 비밀>로 테마를 정하고 곧바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아이의 기억력과 아빠의 발전된 해석으로 첫 번째 방의 자물쇠들을 거침없이 열었다.

전에는 몰랐던 것도 새삼 알게 되어 "오호~그랬구나" 하며 새로운 진리를 터득한 듯 즐겁다.


두 번째 방에 들어가서는 전에 풀지 못했던 부분에서 막혀 힌트를 한번 썼다.  반지가 든 상자까지 찾은 후 마지막 비밀번호를 열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지막 비밀번호를 남편이 극적으로 찾아내었고 상자가 열린 순간 셋이서 "얏호" 만세를 외쳤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상자 안의 열쇠로 문을 열고서 드디어 방을 탈출했다.

반지 상자까지 들고 나와 카운터에 갔더니 직원분이 웃으시며 사진 촬영을 해주겠다고 한다.

방탈출을 하면 카페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출력해 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사진을 받아 든 아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계속 춤을 춘다.

사진 속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브이를 하고 있고, 우리는 그 아이를 안고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집에 오는 내내 아이의 발걸음에는 흥겨움이 묻어났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광복절의 뜻깊은 의미를 되새기는 오늘, 우리 가족은  작은 방을 탈출했다.

우리 셋이서 힘을 모으면 뭐든 하겠구나. 

그렇게 작은 행복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방탈출 기념의 소소한 파티를 했다.


우리는 맥주 한잔, 아이는 음료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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