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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Aug 18. 2023

3333일을 축하하며

우리가 즐거워

오늘은 태명이 하늘이었던 아이를 만난 지 3333일 되는 날이다.



아이가 라면이 너무 먹고 싶다고 한다. 어제 참았으니 오늘 먹어야겠다고 하길래 한국사람은 삼세번, 단군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날,  하늘이 열린 날도 개천절 10월 3일, 뭐든 3의 효과가 있다고 설득하며 내일까지 참아보자고 설득한다.(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이지만)

아이의 팔과 다리가 접히는 부분에 아토피가 슬금슬금 올라와서 먹는 것에 제한을 두고 있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3이라는 숫자를 언급하다 보니 오늘 아이가 태어난 지 3333일이 되는 날인게 아닌가.

그래서 흥적으로 축하의 날로 삼기로 한다.

축하하는 날에는 파티가 빠질 수 없지! 우리만의 작은 파티를 준비한다.



아이 돌잔치 때 답례품으로 주문했던  접시를 몇 개 남겨두어 여태 쓰고 있다. 일부러 그 접시를 찾아  아이가 좋아하는 샤인머스켓을 담아주었다.

그리고는 우리의 사심을 채우는 음주를 위한 준비.

며칠 전에 냉장고 안에 넣어둔 <유미의 세포들 중 사랑세포>가 그려져 있는 편의점용 와인을 꺼내었다.

1만 원대의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목 넘김을 하면 향이 좋은 화이트화인이다.


아이와 함께 열렬하게 좋아하는 <유미의 세포들> 만화책은 읽고 또 읽어서 표지가 찢어져있을 정도이다.

한때는 각자의 프라임세포(그 사람을 대표하는 세포)가 무엇인지 그때그때 달라요~하면서 대화의 중심이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사랑세포가 그려진 와인을 봤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장바구니에 담았었다.

이렇게 가볍게 특별한 날, 가볍게 산뜻한 와인으로 딱이었다.

그리고 각자 좋아하는 안주를 세팅하면서 남편이 스쳐 지나가며 하는 말 " 우린 술 마시려고 준비할 때 제일 일사불란해"

그렇다~우린 술 마실 때 제일 친하다.

오늘은 좀 친하게 지내자~좋은 날이잖아.




아이가 태어난 지  1000일이 되었던 날, 축하하는 의미로 떡집에 꿀 들어있는 백설기를 주문했다.

100일 축하가 아닌 1000일 축하를 새긴 정사각형 작은 백설기를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돌리고, 양가 식구들에게도 눠드렸다.

그런 다음 그 당시 같이 살고 있었던 어머님을 모시고 남편과 셋이서 드라이브를 갔다.



우리 고생했어요!


아이를 1000일까지 키우느라 어머님도, 남편도, 나도 고생했으니 " 오늘은 우리 셋이서 맛난 것 먹고 바다도 보고 힐링하고 와요~"하며 나선 것이다.

바닷바람이 강했지만 따뜻한 햇살아래 차 한잔을 나누며 그저 즐거웠던 시간이다.

어머님은 사랑하는 아들의 팔짱을 끼며 함께 하는 시간이라 행복해하셨고, 난 오랜만에 바다내음을 맡으며 아이스라떼 한잔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남편은 사랑하는 두 여자의 평화 속에서 안도하는 시간이었으리라.


아이를 키우는 우리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렀다.

어머님은 며느리가 처음이었고 그  며느리와 함께하는 육아 또한 처음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사랑하는 그의 두 여자가 한 공간에서  잘 지내는 이상적인 생활을 기대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을 맞닥뜨려 어찌할 바 모르는 혼돈의 시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38년 동안 살던 곳을 떠나 외딴섬에 홀로 떨어진 낯설음 속에서  임신과 출산을 했다. 몸의 변화도 급격히 느끼며 안팎으로 변화무쌍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1000일이라는 시간을 각자의 처음으로  같은 공간에서 함께  보내는 동안  아이 아프지 않고 사랑스럽게 잘 자라주었다. 이는  어느 누구 한 명의 노력이 아닌 모두의 애씀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고생했다고 치사해도 는 것이.



그런 의미로 오늘 3333일을 맞이해 또 한 번의  공치사를 하며 남편과 둘이서 사이좋은 척 와인잔을 부딪힌다.

우리 잘하고 있.는. 것. 맞겠지?!

단, 내일부터는 곧 있을 개학을 맞이하여 아이를 좀 일찍 재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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