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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Jan 02. 2023

서로 다른 육아의 방식

터치하지 말아요

늘 한발 떨어져 아이를 쫒았다.

아이는 신나게 놀다가 엄마가 주변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또 자신만의 세상에서 놀았다.

익숙한 길이기에, 엄마가 뒤따라 오는 걸 아는 아이가 종종 걸어가다가 문득 가만히 앉더니 인사한다.

" 개미 안뇽~"

아주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아이옆을 지나간다.

걸어가다가 어떻게 저 작은 개미보았을까?

어쩜 저렇게 귀엽게 인사를 할까?

너의 세상이 궁금하고 그 세상 속 네가 무지 사랑스럽구나♡

엄마는 뒤에서 또 경이로워하며 눈에서는 꿀이 떨어진다.



그날도 집을 나서며 본인의 신발을 혼자 신겠다고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낑낑거린다.

아이가 도와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그냥 지켜본다.

그래서 늘 늦다. 나가기로 한 시간보다 늦어진다.

산책이나 놀이터에 가는 경우에는 그냥 시계를 보지 않는다. 보통 2~30분은 지체되기에.

별명이 나무늘보인 엄마는 괜찮다. 그냥 기다릴 수 있다.




자신의 의자에 앉아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밥을 먹을 때 숟가락질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그저 수저를 맡겼다.

다 흘리고 먹으니 온 얼굴과 옷, 식탁이 난장판이 된다.

뭐 어차피 한 번에 다 치울 거라 그냥 둔다.

본인이 직접 숟가락질을 해봐야 어느 각도에서 집어 입으로 향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음식을  더 많이 뜰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뜨겁지 않은 이상은 여러 음식의 촉감을 느껴봐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굳이 촉감놀이를 할 필요가 없었다.

답답해서 손가락으로 집어 먹으면 그것도 그냥 놔두었다.


조용하면 사고 치는 아이,  설거지를 하고 돌아섰는데 물티슈 한 장 한 장 다 뽑느라 조용했던 모양이었다.

아이 주변에 물티슈 한통이  다 밖으로 나와 흩어져있다.

" 엄마 청소 안 한다고 닦으라고 그렇게 뽑았니?"

헛웃음 치며 물티슈를 한 곳에 모아두고 바닥이며 먼지 쌓인 곳을 찾아 닦는다.

" 너도 닦아~이 녀석아~^^"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장난감을 물티슈로 닦는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내가 아이를 대한 방식은 이랬다.

정말 위험하지 않으면 아이가 할 수 있게 먼저 기다렸고

도와달라고 하면 지체 없이 달려갔다. 한걸음 뒤에 있었지만 한시도 눈과 마음을 떼지 않았다.

나에게도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이다.



" 어떻게 애를 방치하니?"

" 이걸 애가 어떻게 먹니?"

" 엄마라면 예쁘게, 바르게 줘야지"

" 안 챙기고 뭐 하니"



아이의 신발을 재깍재깍 신겨주지 않는다고,

아이 밥 먹는데 지저분함의 극치를 달린다고 내가 들은 말이다. 내가 만든 이유식 맛이 너무 없기도 한 다.

물론 밖에 나가 식당에서 먹을 때는 좀 덜 흘릴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준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아이가 흘리고 먹든 난장판을 하고 먹든 놔둬도 되지 않나 싶었다.

어차피 한꺼번에 치우고, 어차피 재우기 전에 목욕을 시킬터였다.

입에 묻었다고 입 닦아주고, 손에 묻었다고 손 닦아주고

매매 그 순간에 하지 않았다고 난 아이를 방치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깔끔 떠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뭐 묻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늘 정리하시고 음식손맛이 좋은 어머님아래에서 자란 남편은 아이가 얼굴에 뭐라도 묻으면 손수건으로  바로 닦고,

음식도 정갈하게 예쁜 그릇에 담아내고,

아침에 바쁠 땐 밥을 떠먹여 주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는 할머니와 아빠가 있을 때는 스스로 하는 법이 없다. 물론 내가 할 거예요~라고 <내가> 병이 걸렸을 때도 있었다. 옆에서 도와주는 할머니와 아빠에게 말해보았지만 어린 너에게는 어른이 도와주는 거야라며 계속 해준 탓에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좀 크고 나서는 엄마와 단 둘이 있을 때는 혼자 스스로 하지만 옆에서 다 거들어주는 할머니와 아빠가 있을 때는 스스로 하지 않는다.  만약 다 같이 함께 있는 시간이다. 그러면 난 눈감고 귀 닫고 입을 다문다.

내가 온전히 아이 육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육아를 도와주는 어머님과  남편에게 내 방식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수적으로는 내가 밀린다. 내가 그들의 방식을 따라야 하는데 안따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드릅게 말 안 듣고 있는 것일지도)




문득 아이가 혼란스럽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이미 아이에게 각인된 우리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도 할머니, 아빠,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아이가  알고 있다.

아이는 우리 생각보다 더 큰 세상을 가지고 있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어쩜 어른인 우리보다 더 잘 해내는 자연 속 개체일지도 모른다. (저 작은 개미를 보며 인사할 정도)

우리는 먼저 살아온 길에서 생존본능에 따위험한 요소를 배제하고 좀 더 나은 길을 제시할 뿐 스스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은 아이다.

어느 길을 갈지 선택도, 발걸음을 떼는 것도 아이몫이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혼자만의 방식으로 굳건히 아이를 대한다.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준다 라는 나의 진심이 통하길 바라면서.





 photo by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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