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고 믿고 싶지 않지만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차다. 차가운 겨울 입김으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아직 가을도 제대로 못 누렸는데, 단풍놀이도 못했는데 아쉽다.
마음의 온도가 내려가 있어서 그런지 체감상 느끼는 추위는 더한듯하다.
3주 전 노인대학에서 단풍놀이로 단체 관광을 가셨던 시어머님이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셨다.
얼굴을 부딪히지 않으려다가 엉덩방아를 크게 찧어 왼쪽다리의 통증으로 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얼굴의 가벼운 찰과상과 달리 고관절 골절은 나이 드신 분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검사결과 왼쪽 고관절이 크게 어긋나서 응급상황으로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좋은 경과를 보여 가족모두 한시름을 놓았다.
퇴원 후 간병보호사분이 3시간 정도 오시지만 아직 거동이 불편하신 시어머님을 보살피기 위해 남편이 어머님 곁을 지키고 있다.
출퇴근을 어머님집에서 하고 잠깐씩 집에 들러 옷만 챙겨간다.
이렇게 우리는 주말부부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아침마다 다양한 음악을 틀어놓고, 일어나라 노래 부르며 깨우던 아빠가 없어서, 코앞의 학교를 늘 차로 데려다주는 아빠가 없어서 아침이 불편하다고 한다.
늘 같이 일어났던 엄마를 믿을 수 없는 아이는 먼저 일어나 알람을 끈다.
엄마는 눈뜨자마자 간단한 아침식사 준비하랴, 옷 챙겨놓으랴, 가방에 넣을 물통, 수저 챙기랴, 외출복 갈아입으랴 혼자 바쁘다.
분명 전날밤에 밥도 해놓고 보리차도 끓여두고 했는데,
남편과 나눠서 하던 아침의 분주함을 혼자 하려니 정신이 없다. 그런 정신없는 엄마를 이해하는 듯 아이는
양치도 스스로 하고 시간을 확인해 가며 밥 주세요~라고 한다.
스스로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시간에 맞게 나가자고 현관 앞에 서있다.
현관을 나서면서 "아빠 없으니 좀 그렇네~"라고 아이가 말한다. '엄마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속으로만 조용히 되뇌어본다.
둘이서 손 꼭 잡고 등굣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좋다.
" 엄마~저 나무 봐봐요~"
" 엄마~조선의 왕 순서대로 외웠어? 업적이랑 연관시켜 보자~"
나 고등학교 때도 안 외웠던 조선왕조의 계보이다. 안 외워도 한국사 잘했는데, 벼락치기한 공부의 민낯이 여기서 드러난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외워지지도 않는다. 아이는 방과 후 수업으로 한국사를 배우더니 노래로 단번에 줄줄 꿰고 있다. 아이가 자꾸 조선왕조를 업적까지 연관시켜 질문하니 대답을 못해 난감하다. 다시 벼락치기해야 할 판이다.
그렇게 걷다가 교문 앞에 도착하면 역시 지각 직전, 아슬한 시간에 아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올라간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한 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일정을 조율해서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집에 있기 시작한 것도 일주일이 되어간다.
어제는 아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고사리 같은 손을 쑥 내민다.
" 엄마~단풍잎이 너무 예뻐서 엄마 주려고 주워 왔어"
아이가 건네준 단풍잎은 미처 엽록소를 다 빼내지 못하고 겉에만 붉은 테두리를 지닌 채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듯했다. 그 모양이 알록달록해 보였는지 다양한 색이 예쁘지 않냐고 아이가 묻는다. 아이의 그 해맑은 표정에 (객관적으로 예쁘진 않지만) 더 예뻐 보인 단풍잎이었다.